1부에서 나온 이야깃거리를 중심으로 2부 레퍼런스 패널과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레퍼런스패널_천선영 교수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상황은 전통은 작동하지 않고, 현대적인 것은 있으나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병원 장례식장은 일반화되어있는데, 화장은 몇십년 사이에 일반화 되었다. 우리는 이 변화에 동의하고 생각했는지? 개인적, 집단적 성찰의 과정이 있었는지?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절차가 있나? 집단적 성찰이 부재했다고 본다.
죽음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변했다. 병원 장례식장 정말 가고 싶지 않고 적절한 장소인지 의문이 든다. 병원과 장례식장이 어울리는곳인가? 왜 대한민국에서만 유독 병원에서 죽는가? 전세계에서 대한민국만 거의 유일하다.
작은 미니 아파트처럼 생긴 납골당도 추모를 위해 적절한 공간인지 의문. 단지 보관하기 위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해보인다. 드라마처럼 내 눈높이에 모든 분들이 모셔져 보이는 것이 아니다. 효율성, 기능성, 도구성만으로 그 동안 죽음을 처리해 온 것 같다. 내 삶이 기능성으로만 재단된다면 동의 하시겠나?
인류는 수만년동안 굉장히 많은무덤을 만들었고, 그 무덤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기능적으로는 쓸데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노력을 들였다는 것은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고 여겨졌다는 증거다. 누구를 위해서?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죽음의 처리방식이 산 자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고, 결국은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가고싶다” 는 마음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거기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런 점이 이야기 됐으면 좋겠다, 우선 병원 장례식장에서 죽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른 추모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스웨덴은 우들랜드라는 무덤이 있다고 한다. 그 묘지에 들어가면 마음이 겅건 해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느낌이 든다고, 그런 공간을 가진 사회가 건강한 사회같다. 그런 성찰적인 공간이 한국에도 있었으면한다.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죽은자들과 산자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살아서 장례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팔순잔치와 다른 맥락으로 살아서 감사한 마음을 타인에게 전하며 잔치처럼 하고 싶다. 조금 늦었지만 이야기하면서 새로 만들어가야하는 시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을 후벼파는 방식으로 꼭 해야하나? 오늘같은 자리에서, 살아서 웃으면서 건강하게 죽음에 대해서, 죽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훨씬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입장 바꾸는 데 과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너무 오래 살아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다. 건강수명과 기대수명 사이에 굉장히 많은 차이가 있다. 죽음의 문제가 그간 종교의 문제였고 철학의 문제였다면, 현시대에는 의학의 발달로인해 역으로 죽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나의 죽음인지, 너의 죽음인지 이야기하면 마음이 달라진다. 어르신들도 많이 이야기하신다. 민폐끼치고 싶지 않다고. 자녀들은 그럼에도 살아계셨으면 한다고 말한다.
결국은 우리가 관계 안에서 살고 있는데, 관계를 통해 의미라는 것이 발생하는 것이고 관계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다른 말로 의미다.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서로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게 되는 것이다. 저는 그래서 대놓고 ‘사는 것 자체가 민폐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관계망 안에서 의미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징글징글한 관계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 관계를 건강하게 살아낼건가?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여행이 그렇듯, 삶도 그런 것 같다. 여행을 최소한으로 준비하는 것처럼 죽음을 준비하는 최소한의 태도는 무엇일까? 관계 이야기도 했지만, '내가 끝까지 마지막 날까지 의미있게 살 수 있을까?' 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생(餘生)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해볼 것 다 해보았고 그냥 대충 지나가는거지. 새로운 걸 뭐 할게 있어? 라고 말하는 나이가 다들 온다.
제 학생이 수학과 졸업생인데 나이 서른을 넘겨서 대학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 나이에 뭐하냐고 말렸다. 그 친구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 만나지 말아라.” 이야기 했다. 삶의 의미를 갉아먹는 사람들은 만날 필요가 없다. 우리도 주변사람들에 그 나이에 뭐 그런 걸 하냐고 물은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독일이나 선진국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 가지 부러웠던 점은, 만약 거기서 누군가가 ”저나이에 왜 저러나? 했다면. 그 사회에선 누구도 크게 목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사회의 분위기는 나이 들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을 지지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삶을 끝까지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관계망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발견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의미롭다고 생각한다.
레퍼런스패널_김호성 과장
죽음에 대해 생각이 다 다르고,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셨는데 저도 잘 모른다. 얼마나 알아야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우리 사회의 현황이다.
지금 장례식 분위기가 예전과 굉장히 다른 전반적인 이유는 의료 자체에 수익이 크게 나지 않아서 부대수입으로 장례식장이 많이 생긴 탓 같다. 아파트문화가 발달하면서 장례문화도 크게 바뀌었다.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의료기관들은 죽음을 위해서 디자인 되어있지 않다. 의료기관은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곳이다. 거기 가셔서 내가 왜 끝까지 케어를 못받는가? 말할 수 있지만, 애초에 죽음을 위해 디자인 되어있지않다.
그런 디자인을 세밀하게 만드는 게 저의 역할이다. 그런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의료기관과 시민들의 의식수준 같은 것들이 모여 연명의료법안으로 통과된 것이다. 법안의 핵심요지는 제한된 수명을 사는 분들이 병원에서 끝까지 임종하게 하지 말고, 그들이 편한 곳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게 중환자실에서 빼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생 불가능으로 진단 받아야 하며, 연명의 가능성이 낮아야 한다. 암이 대표적인 불가역적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심장, 폐, 장기에 문제가 있는 분들은 크게 좋아지지 않고 점점 나빠진다. 단순히 노쇠하기만 한 사람은 해당이 안 된다. 이번 연명의료법에 해당되는 범위는 암, 장기에 문제 있는 분들, 에이즈 환자들로 국한되어있다. 투석의 경우 만성콩팥병은 해당이 안 된다. 그러나 외국은 병의 종류와 상관없이 말기 진단을 받으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갈 수 있다.
지금 법률은 병과 환자의 상태가 제한되어있다. 해당이 안 되면 어렵다. 그 법 바깥에 있는 분들은 어려움이 있다. 식물인간 환자가 그 예다. 유명한 김할머니 사건이 있다.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인공호흡기를 빼달라고 가족이 강력하게 요청해서 뺐는데… 거의 1년 가까이 살아계셨다. 지금의 법안 자체는 그 상황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가 고민이 많이 된다. 점점 노쇠해가고 있는 걸 느끼지만 여전히 의식이 있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 대해 안락사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에 한해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있다. 우리나라는 안락사와 개념이 다르다.
연명의료계획은 중단과 유보의 개념이다. 점점 우리나라 인구가 노령화되면 이런 문제 의식들이 많이 논의될 것이고 적극적인 제스쳐가 실행될 것이다. 어떤 특정한 병에 반드시 걸려야만 편히 죽을 수 있다는 게 현재의 현실이다. 암으로 죽는 것이 반드시 불행한 게 절대 아니에요. 현재 의료기술로, 통증을 가장 완화시키기 쉬운 질병 중 하나가 암이다.
연세가 많은 분들께는 직접 알려하는지 말아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료진도 많이 고민한다. 비록 호스피스지만 반드시 보호자들의 승낙을 받고 환자 당사자에게 말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호출받을 수 없다. 정작 환자들은 모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점점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목숨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현실이 녹록치않다. 외국에서는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일까라고 물을 때, '내가 안 아프게 죽는 것'이 선호도 1위다. 한국의 경우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 이 1위다. 끝까지 눈치보며 죽는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렇다.
이번에 법 통과로 인해 의사들은 사실 어려움 많이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