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책표지만 봐서는 안 사게될 것 같은, 내가 해도 더 잘하겠다싶은 요상한 표지디자인의 책 <비합리성의 심리학 (스튜어트 서덜랜드 지음)>을 지난 주에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누구는 쉽다, 누구는 어렵다, 지루했다(실험 사례의 난무!), 다 못 읽었다(다수), 서로의 가치가 다름은 합리/비합리의 문제로 설명할 수 없다, 가치판단의 기준은 합리성으로만 한정할 수 없으며 양심, 기호(favor), 정서, 문화, 도덕, 규범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의 논의가 없었으므로 아쉬웠다, 그렇지만 그런대로 유익했다 등등의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각자의 논의는 댓글로 채워주시면 좋겠고요, 전(발제자) 제 의견, 소감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1992년에 출간됐으나 우리말 번역은 작년말에 이뤄진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실험 심리학의 대표학자란다. 작가 자신이 한 때 심한 조울증을 앓았었고 이에 대한 경험을 책으로 내기도 했다. 많은 뛰어난 작가(문학작가 포함)들이 우울증 등의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 일단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말은 곧 깊이있는 직관, 통찰력 등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정신질환의 덕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뭐 순전히 내 생각이다.
책의 내용은 논증과 근거가 분명하며, 책임감 있고 조직적으로 기술했다는 느낌이다. 다른 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가치판단의 기준을 합리성에 한정해서 기술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 자신이 이런 제한을 명시했고 사실 여타의 가치판단의 기준과 종합적으로 기술한다는 것은 워낙에 복잡하고 방대한 것이 될 것이 분명하므로 저자가 편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발췌하는 것으로 후기를 마치련다(졸려요, 급 마무리^^).
p.93.94) 집단은 개인보다 극단적이다. 만장일치라는 착각. 공동체를 추구하는 집단이 유의하고 주목할 점. 조직의 우두머리는 비판결여를 감내해야하는 점에서 위험하다.
p.118) 공공분야에 고용된 모든 사람들은 공공서비스를 이용해야한다, 그러면 지하철, 건강보험, 공립학교등은 신속한 발전을 이룰 것이다(실현가능한 얘기같진 않지만 뼈있고 재밌는 부분이었음)
p.148) 아이들이 읽기는 물론 산수도 가능하다면 언제나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공부라는 것 또는 더 큰 목표의 수단임을 깨닫도록 해야. 어떤 것을 제대로 알고 무엇인가를 발견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그 자체로 강력한 보상이다.
p.152~155) 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상은 인간의 불행의 총계를 늘림(옳소! 상 주는이, 받는 이, 못 받는 이, 즉 모두에게 고통만 준다는...!) 보상을 주면 그 활동을 평가절하한다. 상벌로 행동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어리석고 비합리적이다.
p.202~206) 사람들은 언제든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낸다. 모든 발언의 15%는 어떤 설명을 찾으려는 시도에 해당, 자기가 참이라고 믿는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연을 날조하는데, 이는 비합리적으로 신념을 유지하려는 경향. 사람들은 설명을 갖다 붙이는 데는 너무나도 머리가 잘 돌아가서 합리적일 수 없을 정도이다.
p.399) 다지선다형 문제의 문제점: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고 기억에만 의지하게 함. 제한된 시간은 충동적이고 경직된 생각을 유도하기 십상.
p.401~402) 합리성은 정말 필요한가? / 바람직한가?
재미있게 읽었고, 유익했고, 동의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사실 이랬다. 내게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할 합리적인 이유 아흔 아홉 가지가 있고, 그 일을 했을 때의 유익한 점이라고 내가 원하는 일을 했다는 것 뿐일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아, 솔직히 합리고 뭐고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을 때도 있다는 거 아니겠나. 책 싫컷 읽어놓고 이런 소리하면 책 헛 읽은 거라고 말한다면, 에잉, 그건 비합리적인 사고 맞을 거다. 되도록이면 합리적으로, 그러나 솔직히 때로는, 아니 아주 가끔은, 하고 싶은대로 그렇게! 하고 싶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