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8 : 내게 맞는 일을 찾아서
사회를 담는 컬렉션에 대한 예비사서들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4월 예비사서들이 나눈 컬렉션은 <E8 : 내게 맞는 일을 찾아서>입니다. 이 글은 E8 컬렉션을 보며 ‘일이란 뭘까? 천직이란 게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솔직하고 때로는 진중하며 종잡을 수 없는 사서들의 대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Q1.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희연) 예비사서 5기로 일하고 있습니다. 1층에서 인사를 담당하고 있어요. 잡지등록도 하고..
지연) 아까 보셨듯이 지하 미끄럼틀 소독을 마치고 왔습니다. 목요일마다.. 걸레로 빡빡 닦고 있어요..
다현) 2층에서 연체 문자와 전화 응대를 하고 있어요. 당연하지만 대출 업무도 하고 있고요!
Q2. <E8 : 내게 맞는 일을 찾아서 컬렉션>에 대한 첫인상 어떤가요?
지연) 옷을 살 때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옷이 없잖아요. 나중에 수선도 해야하고, 반품도 해야하는데 일이 나한테 딱 맞는다? 그건 가능할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희연) 첫인상.. 제목을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이 있어요. 내게 맞는 일을 찾아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그래서 ‘다양한 직업과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담긴 책이 많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컬렉션을 살폈던 것 같아요.
지연) 생각해보면 미디어에서는 직업을 한정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는 안정되고 좋은 직장을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걸 보며 꿈을 키우죠. 판사나 검사 드라마가 흥했을 때 법학과 진학률이 높아졌던 것처럼요! 그런데 드라마가 현실을 아무리 비슷하게 그렸다고 해도 현실보다 더 아름답게 포장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희연) 오늘 회의 때 나온 이야기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몇 개의 직업만 좋게 포장돼 나오는 것 같아 아쉬워요. 그리고 가장 아쉬운 건 좋은 직업이 돈 많은 직업으로 연결된다는 거예요.
다현) 그런 의미에서 E8 컬렉션이 마음에 들어요. E8 컬렉션에는 다양한 직업 이야기가 있잖아요. 특히 『저 청소일 하는데요?』(김예지)라는 책! 직업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작가가 생각하는 노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희연) 맞아요! 컬렉션 자료가 뻔한 직업군이 아닌, 다양한 직업군을 다룬 책이 많아서 좋아요. 그리고 뜬금없는데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게 행복할까?’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아닌,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라” 웹툰에서 본 말이에요. 이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이었어요.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있으면서… 뭐랄까 요즘 워라밸이라고 하잖아요. 그걸 표현하기에 좋은 말 같았어요. 저는 당연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다녀요. 좋아하는 거 말고도 다른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고요. 당연히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도 정말정말 좋지만요. (웃음)
Q3. 내게 맞는 일은 이거다! 확신이 든 순간 있으신가요?
지연) 일이란 노동을 뜻하는 건가요?
희연) 직업을 말하는 걸까요?
지연) 모든 활동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지루한 것 같아요. “나는 화분 가꾸는 게 취미야.”라고 하면 즐거운데 “나는 화분 가꾸는 게 일이야.”라고 하면 피곤해 보여요. 일이라는 게 그만큼 돈과 관련되어 있고, 피곤한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희연) 제게 맞는 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안하고, 기분 좋은 거예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늘 화나 있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었어요. 알바는 주 2회고, 지금은 주 5회 일하는데 알바 했을 때 스트레스가 더 컸어요. 그래서 제게 맞는 일은 지금 하는 일 아닐까 싶어요. 맞는 일을 해도 번아웃은 오지만, 정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힘든 것 같거든요.
지연) 맞아요. 완전 꼭 맞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적성에 잘 맞아야 하는 거 같아요. 옷은 휙 입고 마는데 일은 매일매일, 어쩌면 퇴직 전까지 하는 거잖아요.
희연) 의식주를 책임지기도 하죠.
지연) 그런데 그런 생각 안 해요? 아무리 맞는 일을 찾아도 평생 할 자신은 없다. 이런 생각.
희연)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MZ세대는 평생직장이 없다. 그만둘 수 있는 사람, 짧게 짧게 일하는 사람. 그런데 저는 이게 나쁘지만은 않아요. 맞지 않으면 그만둘 수 있는 거고, 가치관 맞는 곳으로 찾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연) 평생직장이라고 하면 아무리 좋은 일도 더 싫어질 것 같아요. 평생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도 커지고.
Q4. 지금 선택한 일을 시작하게 과정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희연) 처음엔 도서관이란 공간을 좋아했어요. 책이 쌓여있고,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하지만 공간이 좋은 것과 별개로 무조건 사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내 길이 무조건 사서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저는 그냥 문헌정보학에서 배우는 것들이 좋았거든요. 졸업이 다가오면서 다양하게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곳에 오게 됐어요. 그리고 되게 행복하게 일하고 있고요. 아무래도 사서가 천직인가봐요.
다현) 저는 도서관보다는 책이 좋아서 문헌정보학과에 갔어요. 희연님과 반대로 도서관 공간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 조용한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압박으로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책을 좋아해서 이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느티나무도서관을 알게 됐고, 여기라면 재밌게 일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지연)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사서 말고 다른 직업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권유했어요. 성격이 유하다 보니 기업에 들어가서 경쟁하고, 실적 내는 일은 안 맞을 거라고 이야기 해준 거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다가 도서관이 떠올랐어요.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베푸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이요. 부모님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되라고 자주 얘기 했거든요. 이거보다 쉬운 일을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서가 마음에 들어요.
Q5. 사회초초초초년생이 경험한 노동의 재미와 고통은 무엇인가요?
지연) 기상이 늘 짜릿하죠… 솔직히 학교에 늦는 건 제 책임이지만 회사에 늦는 건 함께 일하는 사람과 수많은 이용자와의 약속을 어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침마다 늘 악마와 천사에게 흔들리는 기분이에요.
희연) 신체적 고통은 대표적인 게 목이 아파요. 1층에서 일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대면 업무가 주를 이루다 보니 말을 많이 해요. 눈 마주치면 인사하거든요. 때문에 자주 목도 쉬고 아픈 것 같아요.
다현) 음.. 제 고통은 시간이 없다는 거?
희연) 맞아요! 주말 근무를 하니까 휴일에 대해 아쉬움이 있죠. 물론 월, 화 쉬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랑 약속 잡기 힘들어요.
지연) 사서는 아싸 되기 쉬운 직업 같아요…
다현) 또 온전히 저를 위한 시간이 별로 없다고 느껴요. 집에 오면 저녁 8시고, 밥 먹고 씻으면 10시. 잠깐 쉬거나 운동하면 11시. 일기 쓰면 12시에요. 뭔가 더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요. 다음날 출근하려면 자야 하니까.
희연) 퇴근 후에 모임 가고, 영어 공부하는 건 도시 괴담 같아요.
지연) 아, 그리고 사서는 척척박사여야 해요. 이거 완전 고통입니다. 제가 과학분야 담당 사서잖아요. 관심있고, 좋아하는 분야인데 가끔 전공자분들이 와서 책 찾을 때 진땀 나요. 전공자를 상대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이용자분들이 봤을 때 사서는 다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우리도 잘 모르거든요.
희연) 그쵸그쵸. 책 찾을 때 KDC(한국십진분류표)가 머릿속에 촤라락 펼쳐지며 ‘음 이건 여기에 있겠군, 이건 여기에 분류하는 게 좋겠어!’ 하는 게 아니니까요.
지연) 맞아요. 우리도 다 찾아보고 공부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노동의 재미도 이야기해 봐요. 우리 거의 고통밖에 말 한 게 없어. (웃음) 이 글 보면 사서 하기 싫을 것 같아요. 거의 사서하지 마세요 수준인데.
희연) 그럼 재밌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저 같은 경우 어려운 만큼 뿌듯함이 있어요. 뭔가를 찾았을 때, 정보를 제공할 때 느끼는 이상한 뿌듯함이 있어요. ‘내가 도움이 됐구나, 그래도 사람한테 도움이 된다는 건 좋은 거구나’ 많이 느끼게 됐어요. 다양한 사람 만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고요.
지연) 지하에서는 저를 선생님이라 불러요. 제가 존중해주는 만큼 이용자분들도 저한테 존중해주는 게 좋아요. 그리고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끼리 생기는 의리와 끈끈함이 있는 것 같아요.
희연) 진짜 사서의 고통은 사서만 알아요.
지연) 맞아요.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끼리 아는 뭔가가 있어요. 희연님 보잖아요? 아침에는 명랑하게 있는데 오후 즈음 되면 눈이 풀려 있고, 말도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은능흐스요’ 이래요. (웃음) 근데 저도 그러거든요. 오전에는 사람보고 인사하다가 어느 순간 모니터만 보고 인사하고 있어요.
Q6. 여러분들은 앞으로 어떤 일을 가지고 살 것 같나요?
지연) 막막하네요. 하지만 느티나무에서 일한 1년이 제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뭘 하든 바탕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다현) 맞아요. 어딜 가도 조금은 참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어! 저 이거 관련된 거 해봤어요~’라고 말 할 수 있는 느낌이죠. 그만큼 많은 걸 배우고 있잖아요.
희연) 다들 저랑 생각이 비슷하네요. 첫 도서관이 느티나무여서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특히 여기 와서, 나 전공 잘 골랐나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연) 그리고 반항아 기질을 불러일으킨 느낌. ‘이건 이렇게도 할 수 있잖아!’ 하고 넓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희연) 그런데 이런 생각을 다른 도서관 가서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어요. 규격화되어있거나, 정해진 룰이 있는 도서관에서 의견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또 원하는 도서관이 아닌 다른 도서관으로 배치를 받을 경우 거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해요.
지연) 우리는 어떤 일을 해도 다 잘할 거예요. 카운터 혼자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독립적이에요. 그리고 일이라는 건 정말 이 컬렉션 제목 같아요. 죽을 때까지 찾는 거잖아요.
희연) 맞아요. 답이 없어요.
지연) 그쵸, 노답이 아니라 정해진 게 없다! 또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그게 영원할리 없잖아요. 하고 싶은 걸 찾아 계속 떠나야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