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10번에 걸친 '파고 파헤치는 우리 역사; 주먹도끼에서부터 독립선언서까지' 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강연과 탐방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세 명의 강사를 모시고 선사시대부터 독립운동까지의 역사를 ‘파고 파헤쳐’ 보았습니다.
먼저 1~6강은 김영숙 작가와 함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보는 강연이었어요.
박물관에서 전시를 보듯, 각 시대별 유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각 시대를 나타내는 유물과 유물에 얽힌 역사적 배경부터 시대상, 당시의 문화까지 두루두루 파헤쳐볼 수 있었습니다.
김영숙 작가는 직접 발굴에도 참여한 학예사로,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생생한 경험과 더불어
발굴과 관련한 희대의 사기극부터 역사적인 발굴현장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발견된 적 없던 '아슐리안(Acheulean; 주먹도끼)'의 발견,
선사시대 유물 발굴에 얽힌 시대의 사기극 등 학설을 뒤집을 만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발굴을 위해 무열왕릉을 건드리자 폭우가 쏟아지고,
특종 경쟁으로 몰려든 기자들을 피해 하룻밤 만에 발굴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왕릉의 정교함에 또한번 놀라기도 했습니다.
강연을 듣는 동안 참여자들 표정에서는 안타까움과 감탄이 묻어났습니다.
덤으로 박물관은 적게 보고 자주 가야한다는 꿀팁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박물관 전체를 하루에 관람하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박물관 큐레이터들도 전시를 기획할 때 관람객의 피로도를 고려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박물관은 적게 보고 자주 가는 걸로 해요.
7회차 강연은 김창희 (전)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과 살아 있는 역사 ‘머내만세운동’을 주제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머내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고기리와 동천리 주민 4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벌인 용인의 대표적인 독립운동입니다.
게다가 머내만세운동은 마을사람들이 발굴해낸 역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습니다.
2017년 일제가 작성한 ‘범죄인명부’를 주민들이 찾아내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머내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애국지사들이 한 분 한 분 알려지게 되었고, 그 분들의 활동터에 표지석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김창희 님은 애국지사 후손의 도움을 받아 일제 당시 작성된 행정지도와 지금의 지도를 대조해 머내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머내만세길’을 찾아냈습니다.
주민들이 산책길 삼아 걷는 길이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길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7회차 강연에 이어 첫 번째 탐방에서는 머내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머내만세길을 따라 다녀왔습니다.
탐방의 시작점인 느티나무도서관도 머내만세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죠.
1919년 3월 29일 머내만세운동에 참가한 김원배 애국지사가 농사짓던 터전이 바로 느티나무도서관이 있는 자리입니다.
도서관 입구를 잘 살펴보면 안내표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헌화와 묵념을 가진 후 버스를 타고 머내지역 곳곳을 탐방했습니다.
탐방에서 다녀온 곳은 머내만세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의 생가 터였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집이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정문에 안내표지가 붙어있어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머내만세운동 발상지(지금의 고기초등학교 자리) 표지석이 생겼을 때 초등학생 3명이 표지석을 발견하고 스스로 마음내어 절을 2번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참여자들도 헌화와 묵념을 하며 독립정신과 헌신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머내만세운동 안내표지들은 참여자들이 일상적으로 걷는 길목에 위치한 곳들이 많았는데요, 이번 탐방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참여자도 있었어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만든 땅 위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탐방은 우상표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 회장과 함께 ‘독립운동 속 용인’이라는 주제로 처인구 지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용인 3대 독립운동 가문의 오광선 장군 등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기념비를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용인 지역에는 생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오광선 장군 같은 분들도 계시지만, 이완용과 같이 친일 매국노를 대표하는 송병준도 있다는 사실이 많은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차례로 둘러본 독립운동 현장 중 참여자들이 인상 깊게 본 현장은 바로 용인중앙시장 안에 위치한 친일상징물전시관(팔굉일우비 전시관)이었습니다.
‘팔굉일우八紘一宇’는 일본이 세계정복을 위한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로, 팔굉일우비는 친일 역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 비석이 양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의 휴식을 위한 벤치로 사용되다 발견됐다는 것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참여자들은 독립운동기념관이 생기면 바닥에 두고 밟고 다니자, 똑같은 모양의 벤치를 만들자 등는 의견을 내기도 하는 즐거운 분위기였습니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비는 내렸지만 참여자들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 했던 두 번째 탐방이었습니다.
마지막 후속모임은 우상표 님과 함께 용인 지역 이름에 담겨 있는 역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명은 땅의 모양, 세시풍속, 해당 지역의 역사 등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는데요,
따라서 지명을 알면 그 지역의 역사,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명은 일본이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 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1914년에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지명을 변경했습니다.
이 시기에 용인 지역의 지명도 모두 바뀌게 됐습니다. 고유한 지명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게 바꿔버려 의미가 변형되거나 합성지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이 있는 수지구는 (조선시대)수진면과 지내면이 합쳐져 ‘수지’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모두 10회에 걸친 길 위의 인문학 <파고 파헤치는 우리 역사; 주먹도끼부터 독립선언서까지>가 끝났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곳의 역사부터 이름까지를 학예사가 된 듯, 독립운동가가 된 듯 파고 파헤쳐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지역 역사를 듣고, 그 현장으로 탐방가는 기회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직시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다시금 채우는 시간이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