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간판에 적힌 ‘김치’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할 단어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김치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들이 많다. 카페 한쪽에는 신선한 과일을 판매하고, 한쪽에는 오래된 민화와 그림들이 걸려있다. <골목을 바꾸는 작은 가게들> 컬렉션 버스킹을 통해 책까지 품게 된 ‘카페 마마우스’.
커피와 김치, 과일과 그림까지.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한데 모인 이 풍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카페 곳곳에 담긴 이야기를 사장님에게 들어보았다.
▲ 카페 한켠에 모여 있는 오래된 그림과 과일 박스
카페가 생긴 지는 13년, 지금의 사장님이 운영하기 시작한 지도 10년 가까이 되었다. 사실 이곳에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깡통커피’와 ‘마마우스’ 원래 ‘깡통커피’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중, 알고 지내던 마마우스 업체와 협력하게 되어 두 이름을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컵홀더와 간판에는 ‘깡통커피’라는 이름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간판에 적힌 ‘김치’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다른 마마우스 매장에서 판매하는 김치 파스타에서 비롯된 글자였다. 하지만 이곳은 대부분 혼자 근무하는 카페라 손이 많이 가는 음식까지 판매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간판을 보고 김치를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자 사장님은 정말로 김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김치김치 얘기하시길래, 김치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했지.”
사실 사장님은 약 30년 동안 식자재 유통업에 종사해 왔다. 지금도 카페와 함께 식자재 일을 이어가고 있어 직원이 매일 가락시장을 방문한다고 한다. 덕분에 손님이 원하는 김치를 주문받아 판매하기도 한다. 김치뿐만이 아니다. 마마우스에서는 신선한 과일도 판매한다.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하는 지인을 통해 좋은 과일을 골라 들여온다고 한다. 같은 과일도 크기와 품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저렴하기만 한 과일보다는 크고 좋은 과일을 고르는 것이 사장님의 기준이다.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과일을 사고, 간판을 보고 김치를 주문하기도 하는 카페. 마마우스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카페 안으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커다란 민화들과 곳곳에 놓인 오래된 소품, 담금주까지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떻게 이런 소품들을 모으게 되었는지 묻자 사장님은 그냥 하나씩 마 사모으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웹툰을 즐겨 본다고 했다. 오랜 관심이 오래된 그림과 소품들을 수집하는 취미로 이어진 것이다. 어느 날 사장님은 당근에서 '작가 미상'의 대나무 그림을 발견했다.
"나는 100년을 연습해도 저렇게 못 그리겠다고 생각한 대나무 그림이었어."
아주 커다란 호랑이 민화도 눈길을 끌었다. 어떻게 좋은 그림을 알아보시냐는 물음에 처음부터 그림을 잘 알아보았던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때로는 실패하고 속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수집하고 공부하면서 조금씩 보는 눈이 생겼다고 한다.
카페 한편에는 많은 술병이 놓여 있다. 열아홉 살 때부터 직접 술을 담가 온 사장님이 카페를 처음 열었을 때 담근 와인부터, 산에서 직접 채취한 인삼 계열 식물로 담근 술까지, 저마다 이야기를 품은 술들이다. 특히 와인은 그해 포도가 무척 달고 좋아서 담그게 되었는데, 코냑과 비슷한 풍미가 난다고 한다. 카페 앞 정원에는 사장님의 손길이 닿고 있다. 여러종의 꽃이 각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매일같이 사장님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카페에서 쓰는 허브도 이곳에서 직접 길러, 매일 아침 필요한 만큼 뜯어 음료에 사용한다.
김치가 적힌 간판부터 과일, 오래된 민화와 소품, 직접 담근 술과 책까지.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모여 마마우스만의 풍경이 되었다. 하나하나가 사장님의 오랜 취미와 경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마마우스에 쌓여 온 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아니다. 한자리를 오래 지킨 카페에는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의 시간도 함께 쌓여 있었다.
마마우스를 찾는 손님의 80%는 단골이다. 사장님은 손님이 들어서면 반갑게 인사한 뒤 먼저 묻는다. "항상 드시던 거 드릴까요, 아니면 따뜻한 거 드릴까요?" 다른 카페와 달리 마마우스에서는 취향을 기억하고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다. 사실 묻는 것도 형식에 가깝다. 대부분 늘 마시던 것을 마시고, 가끔 뜨거운 음료에서 차가운 음료로 바꾸는 손님이 있어 확인할 뿐이다. 사장님은 "수백 번 오신 손님인데 그걸 모르면 안 되죠"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단골이 많다 보니 사장님과 거의 함께 지내다시피 하는 손님도 많다.
사장님은 자신이 그다지 친절한 사람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컬렉션 버스킹 방명록에는 사장님이 친절하다는 말이 여러 번 적혀 있다. 이 공간이 어떻게 기억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내 아지트요. 나의 인생을 어느 일정 부분 함께했던 아지트."
친구를 만나거나 커피가 생각날 때 가장 먼저 이곳이 떠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다른 카페에 갈 수는 있어도 늘 가고 싶은 카페는 여기였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서가 앞에서 무슨 책이 있나 구경하는 손님을 볼 때가 가장 좋다는 사장님은, 커피와 함께 문화가 가까이 있는 것 같아 더 뿌듯하다고 했다.
손님 중에는 하루에 두세 번씩 들리는 사람도 있다. 삼풍동이 비어 가면서 이 동네의 누군가를 만나러 왔다가 카페에 들리던 발길이 끊겼고, 그만큼 가게는 더욱 단골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장님은 지금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한다.
"엄청 감사하죠. 사실 안 그러면 문 닫아야 되는데."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해 온 사람이 손님을 대하는 방식은 거창한 서비스가 아니었다. 어제 왔던 사람을 오늘도 알아보는 일이었다.
한자리에서 오래 가게를 하다 보면 마음 편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벽이면 카페를 찾아오는 방황하는 청소년들 때문에 속을 끓인 날도 많았다. 말투와 행동이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더 오지 말라고 말해야 하나, 오래 고민한 적도 있다. 그래도 사장님은 아이들을 내쫓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준 것이다.
"제 눈엔 귀엽기도 해요. 그 친구들이 그냥 여기 앉아서 커피 마시고 떠들던 애들이었는데. 이제 그 친구들의 인생 과정도 지켜보는 거잖아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군대에 가기 전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인사하러 왔을 때, 사장님은 빵 하나, 음료 하나를 더 얹어 주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했다. 제대하고 다시 찾아온 아이들은 어느새 철이 들어 있었다.
"아, 내가 안 내쫓길 잘했구나 싶었죠."
사장님은 카페를 하는 사람은 손님의 인생에 충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십 년 넘게 지켜보니 손님들의 인생이 보였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오가고,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간다. 손님이 힘들 때는 사장님의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고, 가게가 어려운 순간에는 손님들이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섣불리 간섭하지 않고, 변함없이 공간을 내어 주는 것. 그것이 사장님이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묻는 질문에 사장님은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저 사람의 힘든 점이 보여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 반, 불행 반이거든요."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을 겪으며 내린 결론이다. 한평생을 살면서 누구나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과 행복의 총량이 있다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조금 더 편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재력이 많든 외모가 화려하든, 불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어요."
사장님은 고통도 행복도 살아가며 묵묵히 넘어가야 할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사장님의 시선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너그럽다. 십 년이 넘도록 카페를 운영하며 부딪힌 일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도 이 '행복 반, 불행 반'의 법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 마마우스의 1L 커피잔
“100% 행복한 일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저한테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니까요. 그래도 카페는 손님들이 행복을 주는 경우가 참 많아요.”
이번 인터뷰는 ‘이용자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게 어렵다’는 예비사서들의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오늘의 사서로 이곳을 찾았을 때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사장님을 보며, 이용자를 대하는 마음과 관계를 시작하는 태도를 배우고싶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이 십 년 넘게 지켜온 것은 어제 왔던 사람을 오늘도 알아봐 주며, 변함없이 자리를 내어 주는 마음이었다. 컬렉션 버스킹으로 마마우스에 놓인 책들도 그 마음의 연장이었다. 사장님은 ‘우리 손님들이 이런 책을 찾아’ 하고 말할 만큼, 책 한 권 앞에서도 단골 손님들의 얼굴을 먼저 떠올렸다.
커피와 김치, 과일과 그림, 그리고 책까지. 마마우스에 모인 모든 것은 결국 손님을 향한 사장님의 다정한 마음 위에 놓여 있었고, 그 마음 덕분에 이곳은 사장님이 바라던 그대로 누군가의 아지트가 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