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티나무에서는

저는 '회장각하'입니다

작성자 : 강기숙 작성일 : 2010-03-05 조회수 : 6,018

다음 주 월요일 자원활동가 총회를 앞두고, 글 올립니다.

자원활동가회의 회장 강기숙입니다.
지난 한 해 활동가회의 회장을 맡아 열심히 일했습니다. 열심히 일했다는 것은, 실은, 열심히 일 안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회장이 일을 독식하면 안된다'는 느티나무도서관 자원활동가회의 철칙(?)을 몸소 실천했다는 뜻입니다. 아~  저 원칙을 지키느라 저, 정말 노력했습니다. 칭찬해 주세요, 여러분!

이 글을 쓰기 전에 2009년을 시작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사랑방에 올린 글들을 죽 읽어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꿈을 꾸고 나누자라는 글들이 있더군요. 독서회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꿈도 있었고, 놀며 배우며 일하자는 모임도 있었구요, 밤의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도, 게시판을 만들자 등등의 말들도 있었네요. 그런데 놀랍군요. 그 때는 꿈이었던 일들이 참 많이도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많은 꿈을 꾸고 하나라도 현실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기대 이상으로 이루어졌네요. 감격스럽습니다.

저는 사실 개인적인 꿈이 있습니다. 밝힐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어도, 쉽게 이룰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꿈을 꿉니다. 꿈을 꼭 이루고도 싶지만, 사실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한, 살아있음을 느끼며 하루 하루 신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해는 제 개인적인 꿈을 잠시 접고, 도서관의 친구들과 함께 공동의 꿈을 꾸었습니다. 자원활동가회의 꿈은 이렇습니다. 누구나 차별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을 만드는 데 기꺼이 동참하며, 이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서로에게 배우며, 개인의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 그것입니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제게 이미 오래 전부터 편히 앉아 책을 읽는 곳은 아닙니다. 자원활동가로서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가만히 앉아 책읽는 시간은 그에 반비례하더군요. 그렇지만 그런 와중 짬짬이 책과 만나는 순간들은 더 짜릿하고, 소중하고 그렇습니다. 책정리 하면서 이런책도 있었네 하기도 하고, 신간서적들을 가장 먼저 만나보기도 하고, 책을 다양하게 빠르게 만나보는 재미도 있구요. 세상 모든 것이 책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도서관은 활자화된 책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살아있는 유기체, 살아있는 책이더군요. 등장인물 무한하고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야기의 모든 구성 단계도 다 겪게되는 정말이지 책과 전혀 다름 없죠. 느티나무 도서관은 저를 쑥쑥 자라게 하는, 가까이 곁에 두고 싶은 친구같은 '책'입니다.

'회장각하'
박영숙씨(관장님)가 저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저는 저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몸이 오그라듭니다. 둘이 있을 때 그러면 그래도 나은데 다른 사람들 있을 때 그러면 아주 죽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는 걸 굳이 말리지도 않습니다. 싫은 척 좋은 척 은근히 즐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를 한 번도 들은 적 없지만, 그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원활동은 활동가가 느끼는 자기 활동에 대한 자부심 외에는 아무 보상이 없습니다. 저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보상을 바란 적도 없고 이 일이 즐겁고 재미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할 작정입니다. 박영숙씨도 굳이 자원활동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자원활동하는 사람에게 그런 인사조차 실례가 될까 하는 마음에서일 테지요. 압니다. 그래도 그 마음은 언제나 고마운지 저렇게 저를 불러댑니다. 아무 보상도 줄 수 없지만, 최고의 호칭으로 예우하고 싶은 마음, 제가 받는 것은 저 닭살 돋는 호칭이 아니라 그 마음입니다.

지난 한 해, '회장각하'로 잘 살았습니다. 이제 빛나는 졸업장을 물려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총회 때 여러분 모두들 오시고, 여러 역할들에 기꺼이 자원해 주시고, 추천해 주시고 그러길 바랍니다. '회장각하' 여러분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몸이 오그라 들긴 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하고 또 적응도 됩니다(사실, 적응이 쉽진 않아요^^).

지난 해의 활동보고는 총회 때 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패스 하고요, 십주년 기념잔치의 후기는 제가 주말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 살짝 미리 말씀 드리는 바이고요, 수익도 수익이지만 많은 분들이 오셨고, 자원활동가 여러분 모두 아주 기쁘게 잔치에 참여하셨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잔치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축제였지요.

한 시가 넘어가니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모든 자원활동가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 모든 분과 함께 하고 싶지만, 다음 번 엠티 때로 미루겠습니다.
항상 격려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회장각하^^ 강기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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