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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사] 유은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_ 나의 삶이 책이 되다③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3-09-03 조회수 : 5,948

* 다음은 2013년 7월 5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내용입니다. (http://omn.kr/24ec)
   다가오는 9월 28일,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있을 "유은실 작가와의 만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권의 책은 그것을 읽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하며 한 사회의 진로와 역사의 발전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런 책의 위대함 때문인지 거의 모든 언론매체는 정기적으로 책 소개 및 서평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책이 독자의 삶을 뒤흔들 정도의 위력이 있다면, 도대체 그 책을 쓴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충격과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자신의 삶을 책으로 바꿔 낸 사람들을 만나, 책이 저자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들어보는 기회를 갖는다. 언젠가 책을 쓴 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은 많다. 하지만 모두가 꿈을 이루지는 않는다. 이미 자신의 삶을 책으로 바꿔 꿈을 이룬 저자의 인터뷰가 미래의 저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기자 말

어린 시절 '동화앓이'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983년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그 해 5월 5일 KBS에서 어린이날 특집으로 <유니코>(ユニコ)라는 애니메이션 동화를 방영했다. 이마에 긴 외뿔을 단 전설의 동물 유니콘의 새끼가 등장하는데, 여행 중에 인연을 맺은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괴물과 싸우는, 지금으로서는 역겨울 정도로 빤한 내용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몇날 며칠 '유니코 앓이'를 했다. 10년이 지난 1993년,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당시 복제 일본 애니메이션의 메카였던 회현지하상가에서 <유니코> 비디오 테이프를 구하려고 발품 좀 팔았을 정도였으니(결국 테이프를 못 구했지만).

내 삶에서 동화의 위력은 거기까지였다. 영어권에서는 동화를 'fairy tale'(요정이야기)라고 하던데, 공대생으로 미적분 풀이에 절어 살면서 마음 속 요정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내 인생도 롤러코스터 같아서 나이 서른이 넘어 연구원 생활을 때려치우고도 또 한참 지난 지금은 느닷없이 인문사회 분야의 저자로 살고 있다.

애가 둘이 딸리니 마음속 요정과 얘기를 나눌 시간 따위는 없다. 그런데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의외로 동화를 쓰고 싶어 하는 어른이 많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마음 속 요정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어른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어린 시절 동네친구인 동화작가 유은실을 거의 20년 만에 만났다.

"어른? 그냥 되진 않아요... 어린 나는 그대로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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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
ⓒ 위키피디아

"내 안의 아이가 쓰는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물론 자주 오는 순간은 아니지만 무척 환희로운 순간이죠.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처음보고 제 정신구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내가 그냥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내가 그대로 안에 있는 거죠. 그런 여러 명의 내가 겹치고 겹쳐서 나의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학년 동화를 쓸 때는 되도록 어른들과 말을 하지 않거든요. 어른들의 언어는 같은 한국말인데도 다른 나라 말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두 개의 부족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에서 부족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을 80권이나 갖고 있다는 유은실. 그녀는 2005년 1월에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첫 단행본으로 출간했고 지금까지 11권의 책을 냈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은 프랑스어로 출간됐고 중국어판 출간도 앞두고 있을 정도다. 어느덧 중견 작가가 된 그녀에게도 자주 오지 않는 순간, 그것은 내 안의 아이가 온전히 쓰는 것 같은 순간이라고 한다. 마트료시카 인형의 저 깊은 안쪽에 있는, 요정을 품고 있는 아이를 만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보다.

"뭘 찾으세요?"
나 같은 어린이한테 존댓말을 쓰는 게 맘에 들었다.
"여기 주인이세요?"
"주인은 아니에요. 그래도 찾는 책이 있으면 찾아드릴 수는 있어요."
언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도 다정했다.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찾는데요."
언니 얼굴이 갑자기 심각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나한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말했다.
"니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안단 말이야?"
언니는 갑자기 반말로 따지듯이 물었다.
"네. <삐삐 롱스타킹>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언니는 내 손을 잡고 아예 코앞까지 다가왔다.
"니가 정말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을 안다고?"
"언니도 그럼 빌레쿨라 별장에 사는 쿠르쿠르두트 섬의 공주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을 안단 말이에요?"
- 유은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중에서

"어린이 책을 그림책, 읽기책, 어린이가 쓴 글 가리지 말고 1000권쯤 읽었어요. 우리가 영어 배울 때 미친 듯이 팝송 듣고 AFKN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귀가 뚫리잖아요? 그렇게 내 문장이 뚫리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나는 뚫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겨우 시작일 뿐이었죠. 그 나라 말은 알아듣고 의사소통은 되는데 작문은 이제부터야 겨우 시작했다고 할까요.

2011년 2월에 <나도 편식할 거야>라는 책을 냈는데 7~8세가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썼어요. 예를 들자면 '물은 좋다' '학교는 좋다' 이런 식의 문장이죠. 상대적으로 고학년 대상인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서 시작해서 <나도 편식할 거야>까지 오는데 긴 시간이 걸린 거예요. 저에겐 그나마 덜 어려운 게 고학년 동화였어요. 어린이들 중에서는 그래도 어른인 저랑 제일 가깝잖아요. 저학년 동화로 내려갈수록 이건 고수들의 영역이구나 싶더라고요. 어린이 문학의 최고 고수는 그림책 원고를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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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은실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책 표지
ⓒ 창비
 
마트료시카 인형 저 안쪽의 작은 아이를 만나려면 수많은 중간 단계를 거치는 수고가 필요하다. 고학년에서 저학년으로, 그리고 글로 된 동화에서 그림책으로 내려가는 과정은 마트료시카 인형을 하나씩 열어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혁아, 어서 먹어."
엄마가 장조림을 손으로 찢었다. 오빠 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나도."
숟가락을 내밀었다.
"너는 찌개랑 먹어. 아무거나 잘 먹잖아."
"싫어. 나도."
숟가락을 더 내밀었다.
"너까지 왜 이래! 고기반찬만 찾으면 엄마는 어쩌라고. 일요일 하루 쉬는데 아침부터 이럴래!"
엄마 목소리가 커졌다.
"장조림 안 주면 밥 안 먹어!"
"먹지 마! 너 벌써 한 그릇 넘게 먹었어."
눈물이 핑 돌았다. 편식쟁이는 오빤데 내가 혼났다. 엄마는 오빠를 더 좋아한다. 나를 '돼지'라고 놀리는 오빠만 예뻐한다. 나도 이제 편식할 거다. 아무거나 잘 먹는 딸 안 할 거다.
- 유은실 <나도 편식할 거야> 중에서

자신감 느껴지는 습작이 속상한 이유

유은실은 동화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좌절감'과 '경외심'을 꼽는다. 다른 부족의 언어를 익히는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좌절감과 경외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좌절감과 경외심이 느껴지지 않은 습작들을 만나면 속이 상한다고 꾹 눌러 말한다.

"어른인 내가 감히 어린이의 말로 문학을 하려고 한다는 것에서 오는 좌절감이 있어요. 최대한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고 어린이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때 굉장히 많은 한계에 부딪히거든요. 몇 번 출판사 공모전 심사를 본 적이 있는데, 좌절감이 느껴지지 않는 습작을 만날 때 속상하더라고요. '나 예전에 어린이였어. 난 얘들 알아.' 이런 자신감이 느껴지는 거죠.

후배들이 어린이책 작가가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면 좌절감과 경외심을 들고 싶어요. 어느 순간 내가 좌절을 안 한다면 바로 그때가 망하는 순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제 열 권도 넘게 썼으니까 이번 책은 좀 쉽게 쓰지 않을까 하면, 역시나 어려워요. 그럴 때 좌절을 하면서도 그 좌절에 너무나 안도감이 느껴져요. '나 망하는 길로 가고 있진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좌절은 동화를 쓰는 어른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5월 3일 김포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아파트 13층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5월 14일에는 전남 장흥에서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 영어시험을 앞두고 고민하다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도대체 무슨 좌절감을 느꼈기에 한창 놀기에도 바쁠 초등학생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꽃 같은 몸을 던지나? 동화작가 유은실 역시 최근 아이들이 변화를 실감한다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

"제 연봉이 얼마냐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받은 적이 있어요. 얼마 후에 강연을 갔더니 돈을 얼마나 버세요, 돈 잘 버니 좋아요? 이런 질문이 메모지에 적혀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연봉'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도 놀랍고, 연봉 얼마 이하면 작가를 안 하겠다는 당당한 의사표현도 놀라웠어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연봉, 연봉 하는 걸요. 강의를 하다보면 예전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학생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아예 선생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선생님까지 나와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선생님이 나와 통화를 하다가 전화기를 붙잡고 우는 거예요. 예전에는 보통 가난하고 가정형편이 힘든 아이들이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친구들을 괴롭혔는데, 요즘에는 인물도 잘나고 부모도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공부 좀 하는 놈들이 약한 아이들을 인격살인 한다는군요. 절대 학교폭력에 걸리지 않게, 교묘하게 말이에요.

더 놀라운 것은 그런 행동에서 쾌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런 아이의 행동을 학부모에게 지적하면, 무슨 증거로 공부 잘 하고 똑똑한 내 아이의 명예를 훼손하느냐고 한다는 거예요. 막막해요. 어린이책 작가인 나는 지금 여기서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건지."

"동화는 어린이 편드는 책이에요"

얼마 전에 읽었던 <학교의 눈물>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SBS스페셜에서 방송했던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인데, 정말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하기도 하고, 전교 등수 1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 버젓이 학교폭력을 행사하고도 그다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학교는 망가져 있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노동자를 갈라치고, 강남과 변두리로 삶터를 갈라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정의를 갈라치는 어른의 세상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 교실에서 재현하는 것뿐이다.

"기성세대로서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합니다. 열심히 살면 이뤄진다? 아이들한테 사기 치는 것 같아요. 주인공이 어떤 역경을 딛고 무언가를 이루는 얘기는 안 하고 싶어요. 나는 그런 식의 서사를 더 이상 유포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일상의 순간순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어떤 편집자가 '유은실은 실패하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저의 최근 작품은 더 그렇지요. 내 작품에서는 잘 실패하는 것이 성공이에요. 우리는 자꾸 성공만 가르치는데 저는 잘 실패하는 얘기를 쓰고 싶어요. 실패는 삶의 일부죠. 우리 인생에서 잘 실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저를 돌아봐도 그래요. 성공보다는 실패를 훨씬 많이 했어요.

한번은 어떤 학부모님이 저에게 '선생님은 왜 동화를 쓰세요?'라고 질문을 했는데, 나는 세상에서 던져진 저 아이들이 가여워서 동화를 쓴다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굳으면서 당신이 그런 생각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당신 책을 안 읽혔을 것이라고 얘기하더군요. 제 책이 불온서적인 거죠(웃음). 저에게 동화는 어린이 편드는 책이에요. 중립적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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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작가 유은실이 20년 만에 동네친구와 만났다
ⓒ 임승수

다른 부족의 말을 이해하려 애써온 그녀는 어느덧 다른 부족원의 '편'이 됐다. 마치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이 나비족에게 점점 동화돼 그들의 '편'이 됐듯이. 마트료시카 인형 저 안쪽에 있는, 요정을 가진 아이와 얘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동화작가 유은실에게 꿈을 가져다줬다.

"내 최종 목표는 그림책이고 더 나아가서는 글자 없는 그림책의 시놉시스를 써보고 싶어요. 유은실의 작품인데 유은실의 문장은 하나도 없는, 구성만 있는 책 말이죠. 3~4살도 읽을 수 있는 그림책 원고, 거기까지 회갑 때까지는 가고 싶네요. 어린이 문학은 쉬운 말로 인생을 얘기하는 거예요. 48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다가 12색으로 그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점점 산문의 세계에서 시의 세계로 간다는 느낌도 있어요. TV가 나왔을 때 영화가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대요. 그런데 영화는 더욱 영화다워져서 살아남았잖아요. 지금처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아동문학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더욱 문학다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동화를 쓰고 싶어 하는 어른. 그들은 어쩌면 마트료시카 인형의 저 깊은 안쪽에 있는, 요정을 품고 있는 또 하나의 나를 잊지 않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동화를 통해 다른 이들의 속에 숨어있는 자그마한 마트료시카 인형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것은 아닐까.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몰두하는 어른들이 사실은 그다지 제대로 된 소통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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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05 임승수(relti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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