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경제는 경제성장의 대체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과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함께 설계하는 새로운 언어다"
― 느티나무도서관 '2025 글로벌 도넛 데이' 정책연구세션 중에서

지난 10월 17일,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열린 '2025 글로벌 도넛 데이 정책연구세션'은 지역사회, 학계, 지방정부, 국회가 함께 '성장을 넘어서는 경제'를 이야기한 자리였다.
이번 세션은 도넛경제를 정책·제도적 전환의 실천 틀로 삼아, 한국형 도넛경제 모델을 구체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도넛경제(Doughnut Economics)는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라워스(Kate Raworth)가 제안한 개념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되,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넘지 않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Safe and Just Space)'을 지향한다.
안쪽 고리는 사회적 기초, 바깥 고리는 생태적 한계다. 두 선 사이의 도넛 띠가 인류가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이다.
이 원리는 지금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바르셀로나 등 전 세계 도시들의 행정과 예산 설계에 도입되고 있다.

"성장 중심 담론에서 벗어나야 할 때"
첫 발제자로 나선 김선혁 고려대학교 교수는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성장 중심 담론을 짚었다.
그는 "정치 스펙트럼을 막론하고, 정부의 기조는 늘 성장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자살률, 출산율, 환경문제 같은 사회적 지표는 우리 사회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라고 설명하며
도넛경제가 단순한 환경 이론이 아니라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다루는 정책 담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영웅 경기연구원 박사는 도넛경제를 사회적 가치 정책의 구체적 설계 도구로 제시했다. 사회적 가치를 제도화하려면,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열어야 한다고 전하고, "아마르티아 센의 '역량 접근법'을 도입해, 행정이 제공하는 '선택의 자유'를 넓히는 게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적 가치와 도넛경제의 결합이 정책의 참여성과 민주성을 강화하는 실천적 모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날 세션에는 두 명의 국회의원이 온라인으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접속한 차지호 의원은 '지구적 한계(Planetary Boundary)' 개념을 언급하며,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겹친 지금,
도넛경제는 글로벌 위기 속에서 인간의 삶을 회복시키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영배 의원은 뉴욕에서 토론에 참여하여,
"도넛경제는 사회적 가치 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며, 정치가 이를 법과 제도로 담아내야 한다는 과제를 언급했다.

도넛경제는 시민이 그릴 수 있는 정책지도
토론자로 나선 김정훈 경기연구원 박사는 도넛경제를 '기본사회' 실현의 틀로 제시했다. 그는 "도넛경제는 기초경제의 우선성, 지역 기반, 민주적 거버넌스 등 기본사회의 여섯 가지 원리와 맞닿아 있다.
성장이 목표가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 속에서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정우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박사는 "도넛경제는 복잡한 사회적경제 개념을 시민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프레임"이라며, 지자체 예산과 결합한 '도넛인지 예산제' 도입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실제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도넛 틀 안에서 바라보면, 예산의 우선순위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창묵 용인시정연구원 박사는 "사회적 가치는 한 가지 잣대로 측정할 수 없다"며, "위로부터의 법제보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가치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열린 토론에서는 행정과 현장을 잇는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현장에 참여한 임채홍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문위원은
"AI, 지방소멸, 재난 등 현실적 변수를 반영한 한국형 도넛경제 모델이 필요하다"며 데이터 기반 정책평가 체계를 제안했다.
신영연 성동구 정책비서관은 성동구에서 '위험거처 기준'을 만들고, 공공시설 순환 셔틀버스를 도입한 현장의 사례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도넛경제가 이론에 머물지 않고, 행정 언어로 번역될 때 사회는 실제로 변한다"고 말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이번 행사를 통해 학문과 시민, 정치가 만나는 '정책 실험의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참석자들은 성장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을 만드는 데 도넛경제가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는데 동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