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여성신문] “세상의 심장에 풀무질하는 도서관으로 오세요”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4-07-02 조회수 : 5,136

만남 /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세상의 심장에 풀무질하는 도서관으로 오세요”

15년간 사립 공공도서관 운영하며 ‘도서관 운동’ 이끌어
배움과 관계가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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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운동’, 세상을 바꾸는 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흙 한 줌 밟을 수 없는 삭막한 아파트 단지 내에 ‘느티나무’가 서 있다. 마을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오가는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땀을 훔치기도 하고 서로의 안부를 챙겨 묻기도 하는 마을 사랑방 같은 곳. 그런 곳이 되고 싶어 도서관 이름을 ‘느티나무’라 지었다 한다. 15년 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마을’에서 ‘단지’가 되어버린 동네를 도서관 ‘느티나무’는 여전히 아파트 평수가 아닌 사람을 기억하는 ‘마을’이게 하고 있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사립 공공도서관이다. 박영숙(48·사진) 관장이 15년 전 사재를 털어 132㎡(40평)짜리 지하 공간에 3000권의 책을 마련해 사립 문고로 출발한 것이 느티나무의 시작이다. 지금은 1057㎡(320여 평)의 자체 건물에 장서 5만 여권을 비치하고 있는 어엿한 공공도서관이 됐다. 하루 평균 1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지만 야간 연장 개관에 대한 운영 지원만 받고 있을 뿐 정부 지원은 없다. 운영이 힘들지만 박 관장은 “자유의 대가”라며 웃어 넘긴다. 자체 예산을 가지고 최소한 자립하고 있어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대체 책 빌려주는 도서관에 독립성은 무슨 소용이며, 도서관에 자유가 왜 필요한 건지. 박 관장은 느티나무도서관을 “누구나 편안하게 찾아와 소통과 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절대 양보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가치가 ‘공공성’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성과와 효율로 평가하는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으로 보이는 일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그의 표현대로 “잠자고 있는 세상의 심장에 불을 붙이는 느티나무도서관의 ‘풀무질’”인가 보다.

“책을 건넨다는 건 존엄함에 말을 거는 일”
박영숙 관장에게 ‘책은 자유’라고 했다. “우리가 눈을 감고 걸으려면 한 발도 내딛기 어렵잖아요. 알지 못할 때 두려움을 갖죠. 하지만 내 눈으로 세상을 읽고, 맥락을 이해하면 사실 그렇게 두려울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기 눈으로 세상과 삶을 읽는 것, 자기 가슴으로 느끼고, 자기 심장으로 꿈꾸고, 그럴 때 원하는 것을 꿈꾸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사람은 가진 게 얼마가 됐든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가 꿈꾸는 자유는 살아가면서 얽매이게 하는 것들로부터 놓여나는 자유다. 15년 전 이곳에 이사와 만난 ‘원주민’ 아이들, 외환위기 직후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아이들, 육아와 교육에만 매달려 아이의 성적이 곧 자기의 성적이었던 엄마들 모두 자유롭기를 바랐다. 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배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배우는 힘을 가지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책을 나눠 읽었다. 동네 사랑방 같은 곳에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도서관이 됐다.
 
5살 첫아이와 돌이 갓 지난 둘째아이를 업고 넉 달 반 동안 서점에서 살았다. 도서관을 채울 3000권의 책은 박 관장이 그렇게 하나하나 골랐다. 공간을 마련하고 책을 구입하는 데만 2억6500만원이 들었다. 재정은 월급 CEO로 사업을 하는 남편의 몫이었다. 박 관장의 든든한 동지이자 후원자인 남편은 지금까지도 느티나무 도서관의 후원 회장을 맡고 있다. 그렇게 차린 도서관에서는 동네 아이들 밥부터 해 먹였다.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당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아이들과 개발 붐으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멀리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녀야 했던 ‘원주민’ 아이들이 먼저 그 공간을 채웠다. “도서관 차렸다더니 밥집 하네”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정체성의 갈등도 있었지만 이 아이들에게 책을 볼 권리, 문화적인 것을 누릴 권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도서관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이곳에 차마 아이를 들여보낼 수 없어, 도서관 바깥에 아이를 세워두고 자신만 들어와 책을 빌려가는 엄마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뼛속까지 스며든 ‘양극화’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낯을 익히고 정이 들면서 엄마들이 ‘그 아이들’에게 ‘책 고르는 동안 우리 아이 좀 돌봐 달라’ ‘우리 아이에게 책 좀 읽어달라’며 아이를 맡겼다. 박 관장은 “이런 게 기적”이라고 했다. 이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충분히 애쓸 이유가 있다고도 했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고집스러울 만큼 공공성이라는 것을 잡고 올 수 있었던 힘은 아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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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공공성’, 모든 사람의 꿈꿀 권리
 
 
순전히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입학한 서울대에서 소비자아동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그는 1980년대 후반 빈민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공부방과 사회복지시설에서 만난 아이들의 삶을 보면서 ‘통합’이라는 화두를 오랫동안 안고 살았다.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너희들에게 주어진 삶은 요만큼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건 너무 반칙이고 불공평한 거잖아요. 소위 문화자본, 사회자본이라는 게 어릴 때 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생기는 것인데 이 아이들에게 관계는 완전히 차단돼 있는 거예요. 소외계층이 먹을 게 없고, 집이 없는 것보다 관계에서 소외되는 게 더 심각하더라고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울리고 같이 시간을 보내야 익숙해지고 서로 이해도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가 말하는 ‘도서관 문화’는 배움과 관계가 어우러진 것이다. ‘온 세상이 담겨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성찰하고 상상하는 힘을 길러 자기가 주체가 되고, 그 주체들은 서로를 대등하게 존중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도서관 문화가 일상의 삶 속에 스며들면 세상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정보 접근의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서관은 늘 효율성보다는 공공성에 우선순위를 둬야 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통합 그림책이나 독서 보조장비 마련,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외국어 도서 비치, 작은 규모의 건물에 휠체어를 위한 15인승 엘리베이터 등은 모두 이용 빈도나 이용자 수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비용과 수고를 요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공공도서관, 동네마다 있어야
 
공공성을 실현하는 도서관에 대한 그의 고집스러운 신념은 공립 도서관의 변화까지 이끌고 있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서울 성북구 소재 3개의 도서관 신축 과정에 함께해 위탁 운영을 맡았었고, 현재는 경기 파주시의 4개 도서관을 한시적으로 위탁 운영하고 있다.
 
“느티나무도서관 만들 때 전국에 공공 도서관이 400개였어요. 이제야 870개를 넘었고요. 전국에 읍·면·동이 3500개가 넘는데 도서관이 있는 동네가 별로 없었던 거죠. 도서관이 없고 필요하니까 새롭게 만드는 것이 도서관 운동일 수도 있고요. 수험생 공부방처럼 돼버려 공론장이 되지 못한 도서관의 문화를 바꾸는 것도 도서관 운동이겠죠. 이 두 가지를 같이 하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도서관 문화가 일상의 삶 속에 스며들어 세상이 좀 달라지고 나아지는 것입니다.”
 
4년 전 셋째, 8년 전 막내 아이 입양으로 네 아이의 엄마가 된 박 관장은 입양 운동도 실천 중이다.
“정말 먹고살만 하면 한 명씩은 다 데려다가 키우면 좋겠어요. 제가 바빠서 아이들에게 알아서 차려 먹으라 하고 애들 부려먹고, 자장면 시켜 먹고 하지만 복지시설에서 영양사가 칼로리 맞춰주는 식판밥을 먹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밥상에서 같이 찌개 떠 먹고 흘리고 야단맞고 투정부리고. 그런 시절을 겪지 않으면 평생 어딘가가 비어 있거든요. 그것을 도서관 운영하면서도 알게 됐어요.”
 
느티나무도서관 관장으로, 느티나무도서관 재단 이사장으로, 네 아이의 엄마로, 문헌정보학과 석사 2학기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살아가는 그는 모든 사람의 꿈 꿀 권리를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책을 건넨다는 것은 존엄함에 말을 거는 일이었다. 지금 그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언제든 그 책을 펼쳐 읽을 ‘수도’ 있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가슴을 뛰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의 잠재력과 배움과 꿈에 응원을 건네는 일이었다.”(‘꿈꿀 권리’ 박영숙 저·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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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박영숙 관장은
2000년 느티나무도서관, 2003년 느티나무도서관재단 설립. 느티나무도서관 학교 진행(2003~2007). 기업과 작은 도서관을 연결해 운영 내실화에 기여하는 사립작은도서관지원사업 실시(2007~2013). 공공도서관의 지역사회 서비스 강화를 위해 국립 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도서관과 함께 책읽기 사업 주관(2011~2012). 예비 사서학교 운영(2011~). 성북구립도서관 3개 관 개관, 위탁운영(2011~2013). 한·일 교류도서관 심포지엄 개최, 중국 조선족학교 도서실 지원 활동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