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한겨레] [사설/칼럼] 내가 사는 동네가 든든한 이유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4-06-07 조회수 : 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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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사 가지 말자.”
 
이게 웬말인가.
직장 가까운 데로 옮기자 해서 근처 부동산 다 훑고 점심시간마다 집을 보러 다니다시피 해 계약 단계까지 들어갔거늘.
 
4년 전 얘기다. 두 아이와 외국에서 돌아온 남편은 동네 산책에 나섰다가 ‘기러기 엄마’의 한달 수고를 간단히 정리해버렸다. 밤늦게 퇴근해도 아이들이 방과 뒤 여기서만 지내면 별걱정 없겠다는 게 이유였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우리집에서 걸어 5분이면 닿는 그곳은 ‘느티나무 도서관’이다.
 
2000년 지하상가의 어린이문고로 시작해 2007년 후원회원들의 힘으로 지금의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을 올린 이 도서관은 전국에 소문난 사립공공도서관이다. 도서관 하면 연상되는 숨막히는 정적, 사람 사이를 가르는 칸막이 책상은 여기엔 없다. 출퇴근에 허덕이며 마음먹었던 만큼 자주 못 가지만, 입구의 책읽는 그네와 자원봉사 학생들이 사람들을 찾아 끌고 나가는 책수레는 늘 정겹다. 얼마 전 오랜만에 들른 그곳엔 여전히 사랑방·꾸러기방·다락방 같은 이름이 붙은 구석구석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신을 벗고 책과 뒹굴고 있다. 서가 사이 널찍한 평상 위에 자는 아기를 눕혀놓고 곁에서 아기 엄마는 책을 고른다.
 
공간 설계는 물론 집기, 마감재까지 여느 외국 도서관 못지않게 근사한 게 인상적이었다. 신도시 중산층의 눈높이에 맞춘 걸까? 내 선입견이었다.
 
 
“99년 처음 이사 왔을 때 수지는 한쪽에선 아파트가 올라가고 한쪽엔 ‘원주민’ 집이 마구 철거되는 곳이었어요. 아버지에게 맞으면 맨발로 1시간 넘게 달려 찾아오던 아이, 몇번을 정신병원에 들락거려야 했던 아이, 지하상가부터 함께했던 아이들이 ‘내가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얼마 전 만난 박영숙 관장은 소수자, 장애인 그런 구분 없는 ‘통합’의 공간을 꿈꾸다가 도서관의 ‘공공성’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느티나무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독서확대기나 전문단체와 손잡고 개발한 점자통합그림책 등도 비치돼 있지만 정작 장애인 이용이 활발한 건 아니다. 하지만 고1 때 자원봉사를 했던 큰아들이 그랬듯, 아이들은 장난처럼 만져보면서 장애가 어떤 건지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다. 투자 대비 효율만 따지는 기관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느티나무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하다. 도서관 안 마을게시판엔 다양한 행사 포스터와 지역 단체들의 회원모집 공고 등이 붙어 있다. 마침 평소 간판만 보며 궁금하긴 했지만 문을 두드려볼 용기는 나지 않았던 우리 동네 인문학 학습 공동체 ‘문탁 네트워크’를 다음 주말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안내도 붙어 있다.
 
우리나라 도서관 수는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말 전국 공공도서관은 864개로, 10년 전에 비해 갑절 이상 늘었다. 면적 33㎡ 이상, 6석 이상의 ‘작은도서관’은 2012년 말 3951개(사립이 3057개)에 이른다. 정부나 지자체에 도서관 설립이 ‘가시적인’ 주민 혜택 사업으로 부각되며 유행처럼 번진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도서관을 운영할 ‘사람’에 대한 고민 없이 숫자만 늘리고 나니, 사서는 물론 정규직 직원이 1명도 없는 공공도서관까지 생겨났다. 이런 곳에선 꽂혀 있는 책의 대출 외에 다른 역할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어제 선거가 끝났다. ‘화려한 개발보다 작은 공원’ 같은 공약에 마음이 끌린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소통하고 어울리는 공간에 대한 갈증의 표현일 게다. 사실 나는 느티나무에 자주 가지도, 행사에 참여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하다. 언제든지 그곳에 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김영희/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