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용인시민신문] 책 원래의 모습 되찾을 때 보람_081203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0-03-24 조회수 : 5,224

“책 원래의 모습 되찾을 때 보람”
느티나무도서관의 ‘책 고치는 아줌마’ 이원유


“책을 고칠 때는 원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해요. 사람에 따라 내용에서 감동받을 수도 있지만 책의 겉모습에 끌릴 수도 있잖아요. 사람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책에 대한 배려라고도 할 수 있겠죠. 책을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이 일의 매력이에요.”

훼손된 미술품을 원래 모습에 가장 가깝게 복원해내는 사람을 일컬어 ‘복원사’라 한다.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의 직업이 ‘명화 복원사’였듯이, 엄밀히 말하면 미술품이나 문화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도서관에도 복원사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책을 보수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책 복원사’라는 말도 없지만 우리끼리 스스로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도서관에서 '책 고치는 아줌마'로 불리고 있는 이원유(36·풍덕천동·사진)씨의 말이다.

이씨가 책 고치는 일로 봉사를 하게 된 건 용인으로 이사와 느티나무도서관을 만나면서부터였다. 3년 반 동안 같은 일을 해온 그에게 ‘책 보수’는 어떤 의미일까? 도서관 자원활동 중에서도 ‘보수 도우미’는 특히나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이 아니다.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봉사하려는 이들이 모여 있기에 도서관 내에서 존재감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것을 넘어서는 뿌듯함이 있다고 한다. “고쳐져서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볼 때 제일 기쁘다”는 이씨는 “고친 책을 사람들이 보고 또 본 다음 다시 보수서고로 보내왔을 때 그 동안 책을 빌려본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힌다.

보수서고에 들어오는 책은 먼저 도우미들에 의해 분류가 된다. 하루면 고쳐질 책, 일주일은 걸릴 책, 일주일도 더 걸릴 것 같은 책 등. 그들이 고치는 책은 일주일에 30-40권 정도이다. 느티나무도서관에서의 책 보수는 좀 특별나다고 이씨는 말한다. 다른 데서는 셀로판테이프, 본드, 글루건 등을 흔히 사용하지만 여기서는 그걸 쓰지 않는다.

원래 모습에 가장 가깝게 만드는 것이 보수의 원칙인데 그것들을 쓰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하거나 종이가 찢기는 등 오히려 책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주로 한지와 제본풀을 이용한다. “책을 보다가 훼손한 경우 집에서 테이프를 붙여 와서 반납해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이씨는 “주마다 손보고 있는 40여 권은 고쳐야 할 책의 일부일 뿐”이라고 추정한다.

책에 따라 보수방법도 다르다. 본드제본이 아닌 실 제본 책의 경우 일일이 바느질을 한다. 매듭을 한군데도 남기지 않기 위해 10m정도의 실을 감았다 풀었다 하며 잡아당기고 넣기를 반복한다는 이씨. 그럴 경우 하루 종일 작업해도 서너 장밖에는 못한다. 하루면 될 것 같은 책을 보면 얼른 고쳐 내보내고 싶은 급한 마음도 생긴다. 사람들은 그의 성격을 꼼꼼하다고 단정 지어 말하지만 책을 고치다보면 오히려 급해지기도, 느슨해지기도 함을 그 스스로는 느낀다.

요즘은 ‘책 보수’에 대한 강의도 이따금 있다. “마을도서관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완전히 헤진 상태에서부터 복원되기까지의 과정을 실제로 보여준 적이 있다”는 그는 “그래도 책의 훼손상태가 워낙 다양하므로 몇 시간의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보수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도서관에서도 준비 중이다. 그 날을 위해 이씨 자신도 더 배우고 공부하려고 한다.

이원유씨는 평생 한 우물만 파고 싶지는 않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책 고치는 일뿐 아니라 탭댄스, 피아노, 생태활동 등 즐기는 일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라 이것저것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게 즐겁다는 이씨. “탭댄스를 할 때도 가끔 틀리기 때문에 손뼉 쳐주며 웃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그는 “완벽하지 않기에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해 거듭 강조한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 지나, 지원이도 엄마가 스스로 좋아하고 잘하고 행복한 일을 하는 것에서 느끼는 자부심이 크단다.

“다른 사람들은 저한테 욕심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그걸 꿈이라고 생각해요. 목표를 세운 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조금씩 성취해가는 즐거움이 크거든요.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이 좋아요. 꿈만 꾸어도 재미있잖아요. 사람들이 그래서 로또를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하…”

그래서인가, 보수서고에 들어오는 책을 다 고친 다음 서가에 꽂혀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도 가려내어 고치고 싶다는, 책 복원사로서 이씨가 꾸고 있는 꿈도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맑게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에 열정과 멋이 함께 묻어난다. (이정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