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동아일보]책하고 노는 놀이터...아이들 꿈도 크죠(07.12.26)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07-12-26 조회수 : 5,797



《“여기 도서관 맞나요?” 24일 오후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 빨간색 앞치마를 두른 한 아주머니가 분주하게 대출 회원 가입원서를 챙기고 있었다. 도서관답지 않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놀라 물으니 “크리스마스이브여서 이 정도면 조용한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제8회 일민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영숙(41) 관장의 호칭은 ‘아줌마’나 ‘간장’(관장을 잘못 발음한 것)이다. 아이들은 수더분한 옷차림의 박 관장을 그만큼 스스럼없이 대한다. 박 관장은 엄마처럼 푸근하고 친구처럼 다정하다. 그의 앞치마 주머니는 연필 등 아이들의 잡다한 ‘물품 보관소’로 애용된다. 자원 활동가들의 유니폼도 빨간색 앞치마다.》

“허허벌판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아요. 그런데 나무 한 그루가 들어서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늘이 생기고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울타리도 없고 문턱도 없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아무나 와서 쉴 수 있는, 그런 곳이에요.”

박 관장의 소개처럼 느티나무 도서관에는 없는 게 많다. 우선 여느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정숙’이라는 표지가 없다.

코를 후비며 책을 읽는 아이, 피아노를 쿵쾅거리는 아이, 누워서 책을 읽어 주는 엄마와 아이 등 시끌벅적하다.

박 관장은 “시끄러울수록 좋은 게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우리 도서관은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는 삶터에 있는 마을 도서관이잖아요. 책을 통해 다양한 삶을 만나면서 나눌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어요. 조용히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죠.”

2000년 2월 19일 느티나무 도서관의 출발은 단출했다. 대학시절 소외 지역에서 야학활동을 벌이던 박 관장은 ‘왜 꿈꿀 권리조차 평등하지 않은지’ 늘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를 겪었고 그 고비를 넘긴 뒤 뜻하지 않게 ‘거금’이 생겼다.

도서관 출발부터 함께해 온 남편이 자신이 받은 밀린 월급을 포함해 2억 원을 내놓았다. 내 집을 사려다 아파트 지하상가 일부를 사들여 자원활동가이자 사서 1명으로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 운영을 시작했다.

현재는 100여 명의 자원활동가와 180여 명의 후원인 덕분에 살림살이도 나아진 편.

11월에 이 도서관이 사립공공도서관으로 등록되면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새 집으로 이사하는 경사도 맞았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활동가를 자임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작은 활동가’로 불리는 아이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작은 활동가’들은 빨간색 앞치마와 함께 책보수팀, 대출팀, 책꽂이팀, 장난감정리팀, 분리수거팀에서 일해요. 종일 미끄럼틀만 타다 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다들 놀이터보다 도서관이 더 좋대요.”

반짇고리, 약상자, 공깃돌, 시각장애인용 점자 촉각 책부터 지하 1층에는 ‘친구들’이라는 카페까지 도서관 곳곳에는 이용자를 배려한 시설이 가득하다.

4월에는 인근 외국인 근로자센터에 베트남어 몽골어 네팔어 스리랑카어 등 4개 국어로 된 책 1000권을 갖춘 ‘작은 느티나무 문고’도 개관했다.

도서관이 자리를 잡으며 도서 기증 의사를 밝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조건은 까다롭다.

도서의 수준을 고르게 유지하는 게 도서관의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 그래서 기부금을 받으면 비싼 책부터 무조건 산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이 살 수 없으니 우리가 사야죠.”

“(일민문화상 수상으로 받는) 상금 5000만 원이 꼭 산타할아버지가 놓고 간 선물같다”며 어디에 쓸지 행복한 궁리를 해봐야겠다는 박 관장.

인터뷰 말미에 갑자기 말을 멈추고 피아노 선율이 들리는 위를 올려다본다.

“아, 잠깐. 지금 준이(대학 2년생)가 치고 있는 쇼팽연주곡 들리세요? 중학교 때부터 여기에 있는 피아노로 독학을 하더니 이렇게 잘 쳐요. 여기는요! 이렇게 꿈이 크는 곳이에요.”

염희진 기자


▼세상을 바꾸는 한 사람의 작은 소망에 박수▼

■ 심사평

2007년 제8회 일민문화상 심사위원들은 “일민이 곧 만민”임을 깨닫게 하는 우리 사회의 한 ‘사건’에 큰 박수를 보냈다. 한 시민이 하고 있는 작은 일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자 선정 기준으로 △일상적이면서 총체적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 작은 문화공동체 △생명력을 가진 소프트웨어 △미래 지향적 가치의 창출 등을 꼽았다.

이런 점에서 느티나무 도서관은 ‘작지만 큰 사건’이었다. 심사위원장 조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건물은 있되 책은 없고 입시 공부나 고시 공부 공간으로 변질된 도서관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끼리끼리 배우고 소통하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개방 참여 공유라는 21세기 삶의 원리를 그대로 구현해 낸 곳”이라며 “한 사람의 작으나 일관된 소망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일을 해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은 조 교수를 비롯해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김희령 일민문화재단 이사, 홍찬식 동아일보 논설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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