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기획회의 373호 2014.08.05] 도서관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증거자료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4-08-05 조회수 : 4,340


도서관의 가능성 확인하는 증거자료


크기변환꿈꿀권리.jpg



『꿈꿀 권리』 /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박영숙 지음, 알마, 2014

책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면서 막연히 ‘언젠가 어린이도서관이라도 만들어봐야지’ 생각한 적 이 있다. 그림책과 청소년책이 적지 않았고, 유아교육을 전공한 그분(?)까지 한집에 살고 계시니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나이 지긋해지면 “관장님” 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꽤 괜찮은 계획이라고 혼자서 흐뭇했다. 하지만 2004년 겨울, 일하던 잡지에서 느티나무도서관을 취재하고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 라도’라는 마음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어린이도서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분수를 알아채고 시작한 일은 친분이 있는 몇몇 어린이도서관에 부정기적으로 책을 보내드리는 것이다.

『꿈꿀 권리』는 어린이도서관, 아니 도서관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담아낸 느티나무도서관재단 박영숙 이사장의 산문집으로, 그 메시지가 제법 묵직하다. 도서관 운영 노하우뿐 아니라 그곳에서 책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 이야기를 오롯하게 품어낸 탓이다. 심지어 프롤로그의 제목은 ‘사람이 사람에게 책 을 건넨다는 것은’이다. 책을 품은 공간인 도서관조차 책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에 둘러 말하고 있는 셈이다.

9년 넘게 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이제 소년에서 청년이 된 한 인턴은 세간에서 보면 문제아였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빈틈없이 문신으로 덮여 있고 헤어스타일은 10리 밖에서도 알아볼 만큼” 튀었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이 사회의 암”이 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눈총이 없지 않았겠으나 느티나무도서관은 이름처럼 청년에게 큰 그늘이 돼주었다. 여전히 불안한 청춘이지만 팔에 문신을 가득 그려 넣은 청년은 책 속 사진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당당해졌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종종 하는 말 “느티나무 아이들은 뭘 먹어서 그렇게 당당한 거예요?”라는 말은 결국 느티나무도서관 15년이 만들어낸 긍정적 에너지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동네에 제법 괜찮은 도서관이 있으면 등 떠밀어서라도 자녀들을 보내야 하건만,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의 도서관 출입을 막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 때문이다. 한두 번 드나드는 것이야 막을 수 없지만, 이내 재미를 붙이고 동아리모임이나 자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몇몇 부모들은 ‘느티나무도서관 출입금지령’을 내린다. 독서이력, 논술점수에 하등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느티나무도서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맘껏 빈둥거려도 좋고 얼마든지 실패할 권리도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선언해버렸다.

“평가나 경쟁에서 놓여나 진짜 배움의 의미와 즐거움을 스스로 알아가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중략) 아이들이 어른들을 단지 가르치고 돌보고 평가하고 책임지려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배우고 고민하며 성장하고 때론 실패하면서도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만나길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저 돌봄을 받을 권리만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볼 권리’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115쪽).

박영숙 이사장은 느티나무도서관을 운영하며 터득한 도서관과 독서, 삶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세상 모든 배움을 존중하고 북돋우는 ‘비형식적’인 배움의 공간”이자 “배움에서 평생학습이념의 핵심 원리인 다양성, 자발성, 일상성이 담보될 수 있는 토대”인 도서관은 “지적 자유”라는 가치 위에서만 완성된다. 이 모든 것을 이어주는 것이 “틀에 매이지 않는 독서”인데, 삶과 배움의 유기적인 연합을 돕는 역할을 한다.

느티나무도서관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도서관 발전이 아니라 “도서관문화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함께 흔들리며 살아가다” 보면 소소한 기쁨을 맛볼 것이고, 언젠가는 바라는 세상의 단초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이 드리운 커다란 그늘이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꿈꿀 권리』가 박영숙 이사장이 꿈꾸는 도서관과 세상에 대한 포부를 담고 있다면,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는 도서관 운영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 운영의 철학을 중심으로 각종 사례를 소개하고 있어 실제로는 도서관이 추구해야 할 공공성과 지적 자유에 대한 큰 원칙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도 그렇지만 어린이도서관 혹은 작은도서관이라 불리는 사립도서관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이며 “돈 먹는 하마”다. 그럼에도 그 수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도서관 인프라가 미약하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까. 박영숙 이사장은 “시혜나 자선이 아닌 함께 누리고 참여하는 기부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때 비로소 단순 이용자가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춘 참여자가 되기 때문이다. “함께할 사람들이 있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공공도서관들이 어떤 힘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도서관의 정신과 역할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받을 때까지” 느티나무도서관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라는 책 제목은 그런 의지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고객을 ‘고이 모셔두지 않고’ 그들의 상상력과 꿈에 말을 걸겠다는 다짐인 동시에, 말을 걸면 기꺼이 소통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뢰의 표현이다. (중략) 왕처럼 모시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자발성에 대한 바람과 ‘가르치려고 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선언이다”(25쪽).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춘 사회에 대한 바람은 도난 방지장치를 고민할 때 고스란히 드러났다. 책 도난 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고, 최소 1300만 원이면 도난방지장치를 설치할 수 있다는 견적 아닌 견적도 받았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순간 “1300만 원어치 책을 잃어버리려면 몇 년이나 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냥 “책 잘 잃어버리는 도서관”이 되기로 결정했다. 10만 권이 넘는 장서가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에서 보존보다는 이용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는 책과 더불어 성숙해가는 시민을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모든 도서관이 느티나무도서관처럼 할 수는 없다. 그럼에 도 느티나무도서관은 성공 사례와 그보다 더 많은 실패 사례를 통해 도서관이 추구해야 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두 책 모두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증거자료인 셈이다.

장동석 <기획회의> 편집주간 9744944@hanmail.net

'기획회의’ 373호 2014.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