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조선일보]어린이도서관 우리손으로 만들겁니다(04.03.28)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05-03-17 조회수 : 4,486

"어린이 도서관 우리손으로 만들겁니다”

용인 구성,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김정훈기자 hoon@chosun.com


▲ 용인 구성‘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을 꾸려가는 이들이 작은 책을 직접 만들어 보고 있다. 이들은“책을 읽는 공간뿐 아니라 아이들과 주민들이 맘껏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훈기자
지난 25일 오후 용인 수지 풍덕천동 느티나무도서관. “책의 네 귀퉁이를 풀로 잘 여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강사의 말에 따라, 30대 정도의 여성 20명과 아이들이 모여 자그마한 책을 직접 만들고 있다. 제본된 책에 풀을 칠하고, 껍데기를 입히는 손들이 맵다.

‘책 만들기’ 프로그램에는 대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참가한다. 하지만 이날 수강생 중 몇 명은 도서관을 직접 만들어 꾸려나가기 위해 수업을 들었다. 용인시 구성읍 언남리 삼성래미안 2차 아파트 주민들로 짜여진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 단지 내에 도서관을 만들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박은경(여·33)씨는 “주민들 스스로 도서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서관을 꾸려 나가며 부득이하게 파손된 책이나 낡은 책을 고쳐 다시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1219가구의 이 아파트에 입주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주변에 문화시설이 없어 갑갑했다. 20대 새댁부터 30대까지의 아줌마들이 뭉쳤다. 처음부터 도서관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커왔던 세대는 아니었기 때문. 도서관을 생각해 낸 것은 TV프로그램의 영향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터이자 엄마·아빠들의 모임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컸다.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자는 말이 나오자 주변에서 반발도 적지 않았다. 일단 어린이 도서관이 만들어지면 시끄러울 게 분명하고, 안전문제도 책임질 수 없고, 아파트 전체주민이 사용하는 공간이 몇몇 사람만 이용하는 곳으로 바뀌어 버리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어린이 도서관은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마을 도서관으로 성격을 바꿨다.

입주민 회의를 거쳐 관리동 옆 건물 햇살 비껴드는 반지하 60여평을 얻어낼 수 있었다. 건설사에서 의무적으로 마련해 준 1000권의 책이 밑천이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 모델을 찾아나서야 했다. 일산 신도시 도서관 탐방에 나섰다. 어린이 전문서점에 가면 책이 꽂혀 있는 위치를 눈여겨 봤다. 다른 아파트 도서관들에서는 어떤 공간에서 아이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지 살펴봤다. 지난 1월 ‘느티나무도서관’에서 두달 동안 열린 ‘도서관 학교’도 큰 도움이 됐다.

책만 보는 도서관 뿐 아니라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설득시켜야 했다. 지난달 21일 아파트 중앙광장에서 ‘어린이 알뜰시장’을 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부쩍 커 몸에 맞지 않은 옷, 싫증난 장난감, 책꽂이에 모셔져 있던 책 등을 아이들이 직접 가지고 나와 좌판을 벌인 것. 작지만 수익금의 일부분도 도서관 설립기금으로 모아 두었다. 돈보다 더 큰 수익은 “단지 내에 도서관이 생기면 규모는 작아도 값진 문화행사가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열릴 수 있겠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도서관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끼리 살을 맞대고 의견을 모아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 황정애(여·29)씨는 “아이들이 아파트단지에서 큰소리로 인사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며 “도서관 만들기가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커다란 선물”이라고 했다. 도서관 만들기를 서두르기 위해 이 책 저 책 끌어모으지는 않겠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아이들이 맘놓고 뛰어 놓을 수 있는 도서관, 느리지만 견고한 도서관이 이들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