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서가를 떠난 책이 담아온 마을 이야기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23-12-28 조회수 : 97

 

소란스럽고 활기찬 도서관

느티나무도서관은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도서관 한복판에서 책 읽는 소리는 일상이다. 낭독회의 안내 문구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소리 내어 돌아가며 읽어요’처럼 낭독회 멤버들은 한 문장, 한 단어를 곱씹으며 한 손에 들기에도 버거운 벽돌책을 또 한 권 완독한다. 물고기를 좋아한다며 바닥에 주저앉아 바다 도감 푹 빠진 어린이 옆에서 더 큰 사진을 담은 책은 없는지 도감 서가를 뒤지는 아버지를 만났다. 저녁에는 학원에 가야 하니 딱 30분 동안 집중해서 보드게임을 하고 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청소년 이용자와 텃밭에서 분양받은 지렁이 두 마리를 수십 마리의 지렁이로 키워 도서관에 재분양한 이용자도 있었다.

도서관 안팎의 공방, 부엌, 텃밭은 소란스럽지만 활기가 넘친다. 텃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고, 부엌에서는 텃밭 수확물로 파김치를 만들고, 공방에서는 버려지는 옷을 재료 삼아 재봉틀을 돌린다. 남은 시간에는 ‘여기 붙어라’ 모임들이 이어진다. 곳곳의 벽에 붙은 ‘여기 붙어라’ 포스터에는 ‘다도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관심 있는 사람들 찾아요’ ‘캘리그래피 모임’ ‘저녁 같이 만들어 먹을 사람’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이용자들이 직접 ‘여기 붙을’ 사람을 찾는 모집 포스터이다. 공간 운영자의 역할은 그저 공간을 내어주고, 자발적인 활동이 시작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까지다. “오늘은 몇 층에서 뭐 하실 거예요?”라고 물었을 때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과 함께 돌아오는 답은 사서들의 기분도 들뜨게 한다.

 

   

지금을 질문하는 서가

느티나무도서관 책등에는 색색의 라벨 스티커가 붙는다. 어려운 숫자가 나열된 청구기호 대신 작가 이름과 책 제목 첫 글자만 적고, 그 위로는 십진분류의 ‘사회과학’ ‘역사’ ‘문학’과 같은 라벨이 붙어 책이 꽂힐 위치를 알려준다. 느티나무도서관 이용자들은 책을 반납하고 나면 당연한 듯 책을 들고 가 제자리에 꽂는다. 위치를 찾지 못하면 사서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도 알고, 가장 좋아하는 서가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고르는 이용자도 있다.

도서관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 <내게 맞는 일을 찾아서> <내가 살 집은 어디에?> <혼자를 기르는 법>과 같은 제목의 ‘사회를 담는 컬렉션’ 서가다. 컬렉션 서가에는 비문학, 문학, 그림책, 만화뿐만 아니라 책이 아닌 자료들도 꽂힌다. 주제를 아우르는 DVD, 기사, 논문, 법령까지. 고민을 갖고 서가를 찾은 이용자가 질문을 해소하고, 새로운 물음표를 던져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모든 자료가 컬렉션 서가에 모인다. 챗GPT, 알파고 등의 인공지능이 등장하며 인간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 <AI> 컬렉션을 만들었고, 연이어 벌어지는 전쟁 상황을 주시하며 <전쟁> 컬렉션을 다듬었다. 시기성을 잃은 자료는 없는지 꽂혀 있는 자료를 다시 꺼내 읽고, 놓친 자료가 있을까 전문가들에게 레퍼런스(참고서비스)를 요청한다.

 

지역에 스며든 도서관, 함께 만드는 컬렉션

처음 ‘컬렉션 버스킹’을 소개하면 항상 돌아오는 질문이 “음악 공연해요?”이다. 그러면 웃으며 답한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책을 가지고 나가 버스킹을 합니다.” 컬렉션 버스킹은 사서들이 만든 컬렉션을 들고 밖으로 나가 시민을 만나는 여행이다. 도서관에서 10분만 걷다 보면 만나는 공간들은 얼마나 될까. 밥을 먹으러, 누군가에게 선물할 꽃을 사러, 커피 한 잔을 마시러 들르는 수많은 공간이 10분 거리의 마을에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가까이에 있어도 도서관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 만난 수지구청 뒷골목(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로), 문인로의 상점 주인들이 그랬다.

가게 주인장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읽고 싶은 주제나 한때 좋아했던 책이 많지만, 홀로 운영하다 보니 요일, 시간을 막론하고 가게를 비울 수 없었다. 논의 끝에 골목에 있는 상점들에서 2주간의 ‘상점 도서관’을 운영해 보기로 했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피자를 먹으며, 한과를 사러 와서 책을 만났다. QR코드 인식 한 번으로 책을 빌려 가고, 반납을 위해 가게를 다시 찾았다. 주인장들은 서로의 가게에 있는 책을 바꿔 읽었다. 상점 도서관을 마무리할 때가 되어 돌아오는 답은 ‘2주는 너무 짧으니, 가게에 책을 그냥 두고 가라’였다. 그 반가운 호응에 상점 도서관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을 활동가들을 만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연 기후 행동 행사에 <쓰레기 생활자> <비건> 컬렉션을 들고 가 부스를 차렸다. 제로웨이스트 수공예 마켓에는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시민기술> <심플라이프> 컬렉션으로 마켓에 온 시민을 만났다. 이러한 만남은 도서관에 돌아와서 더 빛을 발한다. 사서들은 현장에서 이용된 책을 돌아보며 진짜 필요한 자료를 추렸고, 부족한 자료를 추가하며 컬렉션을 정돈한다. 올해 다섯 차례에 걸쳐 친환경농업인연합회와 함께 진행한 ‘팜파티(Farm Party)’에서 일손 돕기를 하며 만난 농부들에게 추가할 자료를 추천받았다. 그렇게 <도시에서 농사짓기> 컬렉션도 한 단계 진화했다. 조금 더 단단해진 컬렉션을 통해 오늘의 이용자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느티나무도서관의 일상은 예술이 된다.

 

     

 

원문 읽기: https://arte365.kr/?p=102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