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후, 인구라는 삼중위기 앞에 많은 연구들은 위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역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1인 가구와 중고령층의 증가, 세대와 젠더 갈등, 고립과 외로움 문제의 심화 앞에 지역이 관계라는 근육을 창출하는 단위로 중요해지고 있다. 파편화된 10만명이 사는 지역보다 관계로 잘 연결되어 있는 3만명이 사는 지역이 훨씬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은 소멸하고 있다. 비수도권이나 농어촌 지역만이 아니다. 집 밖을 나가도 관계가 없는 외로운 대도시 역시 소멸되어간다. 그렇다면 관계를 연결하고 만들며, 시민을 지역의 주체로 만드는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
우리가 잊고 있는 거대하고 중요한 공공 인프라가 있다. 도서관이다. 공공도서관은 전국에 이미 1300여개가 있고, 작은도서관이 7천개 이상 존재한다. 226개 시군구를 생각하면 공공도서관이 시군구당 약 6곳이 있는 것이며, 작은도서관까지 합하면 37곳이다. 도서관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며, 상업적 소비를 하지 않아도 누구나 환영받는 몇 안 되는 공공의 장소다. 낙인이나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책 빌려 보는 곳이 지역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공공도서관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몇가지 중요한 이슈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의 비중이 2015년에서 28%대에서 2025년 13%대까지 하락했다. 둘째, 중산층의 이용률에 비해서 저소득층의 이용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전자책의 출현과 인공지능의 활용은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필요성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고민이 공공도서관을 변신시키고 있다. 미국도서관협회의 ‘지역을 변화시키는 도서관’ 사업은 1천곳이 넘는 도서관을 주민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지역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거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영국의 도서관은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지역 안전망이 되었고, 핀란드의 도서관은 시민들이 배우고 토론하며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는 ‘도시의 거실’로 자리 잡았다. 책을 빌리고 보관하는 공간은 이제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의 출발이 늦었던 것은 아니다. 용인의 느티나무도서관은 20여년 전부터 책을 넘어 사람을 연결하는 도서관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이 도서관을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카페, 이발소, 와인바, 경로당에서 ‘버스킹’을 하며, 시민들이 원하는 책을 전달하고, 관계를 만들며, 지역을 가꾸어왔다. 문제는 좋은 사례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 경험이 여전히 몇몇 도서관의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남아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변화를 이루어내는 적기이다. 인구감소가 더욱 단단한 관계로 이루어진 지역을 만들 기회, 디지털 기술이 사회적 고립과 정보 격차를 더욱 키우는 도구가 아닌 관계를 돕는 도구가 되게 할 기회, 지역에서 기후위기를 함께 배우고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낼 기회가 지금이다.
공공도서관은 시민들의 질문을 찾아가는 곳이어야 한다. 시민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경로당으로, 공원으로, 다양한 동네 점포들로 찾아가야 한다. 책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지역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누구와 누구의 연결이 필요한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듣기 위해서다. 그렇게 모인 질문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 새로운 컬렉션이 되고, 새로운 모임이 된다. 도서관이 지역을 바꾸고, 지역이 다시 도서관을 바꾸는 선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공공도서관의 운영은 지방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 성과를 증명하는 역할은 중앙정부의 몫이다. 지역의 맥락에 맞는 방식으로 실험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도서관 모델을 함께 만들고,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시범사업을 지원하며, 성과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일은 중앙정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이다.
새로운 건물을 지을 필요도, 사람을 처음부터 뽑을 필요도 없다. 새로운 질문과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정부의 결단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공공도서관은 오래된 공공시설이지만, 지역을 살리는 가장 미래적인 사회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원문 읽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67899.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6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