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들: 현상학 시론(Gesten: Versuch einer Phänomenologie)』(1991/1993)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철학자 빌렘 플루서가 상파울루와 엑상프로방스에서 했던 강연 및 강의 원고들을 묶은 책이다. ‘몸짓’이라는 인간 특유의 움직임을 통해 세계 속에,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탐구한다. 열여섯 개의 몸짓으로 드러나는 인간이라는 존재 몸짓을 향한 플루서의 여정은 개별적인 몸짓에 대한 관찰을 따라 진행된다. 글쓰기의 몸짓, 말하기의 몸짓, 만들기의 몸짓, 사랑의 몸짓, 파괴의 몸짓… 모두 열여섯 개의 몸짓이 우리 앞에 놓인다. 얼핏 보면 이들은 별다른 순서 없이 나열되어 있는 듯하지만, 책을 읽으면 플루서가 왜 다른 몸짓이 아닌 이 몸짓들을 선택했는지, 그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배열되어 있는지 드러난다. 각 몸짓이 함축하는 바 역시 겉보기와 다르다. 사진 촬영의 몸짓이 한 예다. 플루서는 의자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그 사람을 촬영하려는 사진가를 상정하고, 있는 그대로 그들을 관찰한다. 어느 순간, 사진 촬영의 몸짓은 철학의 몸짓으로 변한다. 플루서가 지금껏 설명한 내용을 철학에 대입하면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몸짓에 대한 관찰은 제의의 몸짓으로 이어진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제의는 종교의 문제가 아닌 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방금 말한 것은 모험적인 주장이다. 제의에 관한 전문적 문헌들에서 이야기되는 거의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파이프 흡연의 관찰이 직접적으로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파괴의 몸짓에 대한 질문은 악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식물 재배의 몸짓은 겉보기와 달리 얼마나 변태적이고 반자연적인 몸짓인지, 생태론이 얼마나 역사를 넘어선 곳에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렇듯 글쓰기라는 “단선적이고, 한심하게 일차원적인 몸짓”에서 출발한 플루서의 탐구는 역사와 문화, 종교와 철학을 넘나들며, 우리는 결국 몸짓이란 우리 자신임을, 그것이 언제나 자유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http://www.workroompress.kr/books/gesten-versuch-einer-phaenomenolo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