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난청은 매우 단순하게 이해되어 왔습니다. 악성(樂聖)에게 닥친 그리스 비극적 저주, 그리고 저주를 이겨낸 영웅. 이런 신화가 지워버린 인간 베토벤의 삶을 저자는 파헤칩니다. 청력을 잃어가는 아내 바바라를 통해 난청의 다양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증상과 난청인이 이에 적응해가면서 삶의 다른 부분을 꾸려가는 노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책입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후대에 그의 삶을 기술한 많은 기록과는 달리 음악을 더 이상 못하게 될까봐 절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난청 초기에는 불편함을 호소하였으나 금방 자신의 증상을 받아들이고, 나빠지는 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곡을 할 수 있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합니다. 온갖 청력보조장치를 '얼리어답터'로 사용하고, 악기를 개조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난청으로 인해 베토벤에게 가장 좌절을 안긴 것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평론가들은 베토벤의 장애를 알게 된 후 '장애 때문에 기량이 떨어졌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위대했다'는 식으로 평가를 하기 시작하지요. 베토벤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시점까지 난청을 숨겼던 이유는, 장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면을 장애 하나로 응집시키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당대에도 후대에도 베토벤이 청각장애에도 불구하고 작곡을 멈추지 않은 것은 인간을 뛰어넘는 위대함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청각장애가 생기면 본인이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베토벤은 난청이 오기 전에도 위대한 작곡가였으니까요) 저자가 그동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거나, 편견에 휩싸여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던 베토벤의 기록을 다시 파헤치며 밝힌 것은, 베토벤에게 난청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이지만, 단 한순간도 자신의 소명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장애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자신을 음악으로 구원합니다. 베토벤이 살던 시대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직) 없는 장애를 대하는 관점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고민해보기에도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