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는 대중들에게는 작품과 삶보다 '주머니에 돌을 채우고 강으로 걸어들어가는' 자살의 이미지로 재현되어 왔습니다. 여성 예술인을 업적보다 비극성으로 기록/기억하는 예술사를 뒤집기 위한 페미니즘 비평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이미지는 병약하고, 우울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창백한 여성의 이미지일 것입니다. 그의 투쟁은 관념적이고 육체성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지요. 그런데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이야기>에서는 작은 집을 둘러싼 넓은 정원, 채소밭, 과수원에서 몸을 움직이는 건강하고 강인한 버지니아 울프의 '진짜 삶'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천재적이지만 삶의 물성이 느껴지지 않는 작가가 잘 써낸 글이 아니라, 직접 정원 안에 글쓰기 오두막을 만들고 저술활동으로 경제력을 획득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로 옮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글쓰기 오두막을 완성한 시기와 '자기만의 방'을 완성한 시기가 겹친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천재성이 병약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삶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병약하게 태어나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 지도 몰랐던 소녀가 삶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주체적이고 건강한 삶을 가족들의 예상보다 오래 살아냈고, 스스로의 힘으로 재능을 꽃피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생의 마무리도 일생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살았던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느티나무도서관 3층 담쟁이 덩쿨 아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