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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도서관, 전환을 위한 대화 | 제60회전국도서관대회 포럼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23-10-28 조회수 : 3,968

지난 10월 19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60회 전국도서관대회에 다녀왔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이 대회에서 전국 도서관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서관 현장 경험을 공유하고, 미래 도서관 모습을 고민합니다. 

느티나무는 도서관에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이야기 나누는 포럼 <도서관, 전환을 위한 대화>를 열었습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백영경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패널로 나서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했습니다.

이어서 느티나무도서관 김차경 사서가 도서관이 시민의 실험실 역할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짧은 시간, 밀도 높은 토론도 진행했습니다. 전 국가기록원장을 역임한 느티나무재단 이소연 이사가 좌장을 맡았습니다.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기록을 공유합니다. 

 


21세기형 도서관: 모두가 하도와 낙서를 그려가는 곳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도서관의 어원인 ‘하도 낙서河圖洛書’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전설에 의하면 하도란 황하의 임금이었던 복희에게 용마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말의 등에는 점이 찍혀 있었는데, 복희는 이 숫자에서 ‘선천팔괘’라는 질서를 얻었다.

한참이 지난 뒤, 하나라 우임금은 홍수를 다스리는 데 큰 고생을 했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우임금은 강에서 한 거북이를 발견했다.  

이 거북이의 등에도 글자 기호가 있었다. 하나라 우임금은 낙서를 응용해 홍수를 막는 원리로 응용했고, 주나라 시대에 이르러 주역의 토대가 되었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낙서란 모든 종류의 사건과 사물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질서를 잡는 법이다.  

이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질서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 임금만이 하도와 낙서를 볼 수 있었고, 하도와 낙서를 따로 보관해 놓은 곳을 도서관이라고 불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질서를 잡아야 하는 사람이 선천의 질서가 무엇이고 후천의 질서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장이 도서관이었다는 거다.

‘library’나 ‘bibliotheque’에서는 책이 핵심일지 모르지만, ‘하도 낙서河圖洛書’에서 도서관의 핵심은 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 수학자 로베르트 위너가 말한 사이버네틱스 cybernectics를 나타낸 그림 ) 

 

현대에서는 ‘사이버네틱스’와 연결할 수 있다. 이 동물, 사물, 기계, 인간, 사회, 자연 세상의 만물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고, 통합의 근거가 정보라는 이론이다.

그림을 보면 알다시피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저 변화무쌍한 연결을 보자. 어제의 연결이 오늘의 연결이 아니고 오늘의 연결이 내일의 연결이 아닐 거라는 뜻이다.

여기서 도서관은 뭘 할까?  21세기 도서관은 책을 담아둔 곳이 아니다. 하도와 낙서를 담아둔 곳으로서의 도서관을 생각해보자.

 

도서관에 온 사람들이 “지금 변하는 질서는 뭐고 변하지 않는 질서는 뭘까?” 고민하고 정리하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생활인들이 도서관에 기대하는 바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지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관한 국제 정세로 시끄럽다. 이 사안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싶은데 정보의 범람 속에서 사람들은

도무지 알 길을 찾지 못한다. 이런 일이 현대 사회에서는 대략 여섯 달의 주기로 터진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 챗GPT, 이스라엘과 하마스…

이 모든 일이 터질 때마다 내 생활과 직결되는 충격파가 터진다. 그런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때 사람들은 도서관이 기능을 해주길 바란다. 

 

도서관이 하도와 낙서의 기능을 하려면 갖고 있는 자료를 사이버네틱스의 비전에서 보길 권한다.

 

도서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질서를 생각하고, 눈 앞에서 정신없이 변화하는 질서를 따라가야 한다는 두 가지 요구에 응해 사람들이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정신으로 능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책, 유튜브, 하다못해 찌라시까지 사이버네틱스의 정보 흐름에 있다고 생각하고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특히 컬렉션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들어야겠지만, 

마을 사람들과 그 주제에 대해 정말로 알아야 할 잠재 이용자와 계속 대화하는 게 도서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도서관에서 만들어가는 커먼즈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같은 이야기를 ‘돌봄’으로 바꾸어 말하겠다. 커먼즈라는 용어를 들어보셨을 거다. 함께 나누는 공동의 것, 그러면서도 사유화되지 않은 것을 커먼즈라고 한다.

 자연의 산물들, 사회 기반 시설들, 문화 생산물, 전통 지식이 다 포함된다.  이 이야기를 왜 하나면, 커먼즈를 유지하기 위해 '돌봄'이 핵심적인 요소기 때문이고,

돌봄이 유지되기 위해서도 커먼즈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돌봄이라고 하면 아이 돌봄, 간병 같은 구체적인 돌봄노동에 국한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돌봄이란 상대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세상에 무엇이 중요한가 응답하는 일이다. 

자세히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 핵심적인 것,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능력이기도 하고 상대방의 그런 요청에

응답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며 공부도 해야 한다. 

무엇이 여기서 정말 필요한가? 또 눈앞에 있는 필요를 넘어서 우리의 삶이 지속되려면 어떤 게 필요한가? 제도적인 뒷받침은 무엇이 있나?

이런 차원의 고려를 해야 한다. 그러니 멀리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작은 일도 보고, 큰 일도 보고, 넘나드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능력 자체가 돌봄이다. 

 

특히 도서관은 그런 커먼즈를 만들어 돌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도서관은 우리의 일상,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이고 그 깊이는 어디까지인지, 인간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인지 탐색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디지털 세상과 오프라인을 연결하고, 지식의 영역과 감각적인 경험의 영역을 연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 북미 지역의 원주민도서관 지도>

 

미네소타 지역에는 집단 정체성을 찾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원주민들이 있다. 그 활동의 중심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는 원주민 언어를 가르치고 전승하는 역할을 하면서 원주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현안을 찾는다. 

돌봄의 핵심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말했는데, 도서관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사람들과 함께 생산하고, 이어갈 세대를 기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원주민도서관은 분류 체계도 다르다.

원주민들은 알파벳 자체를 다르게 쓰니까, 어떤 식으로 지식을 분류할지부터 토론의 대상이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이 지식을 어디에 배치할 것이며 과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지 배울 수 있다. 그 자체를 함께 토론하는 장이 도서관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지식은 무엇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 모두 접근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이란 뜻이다.

도서관은 이렇게 중요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아가는 곳, 돌봄과 커먼즈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 토론: 도서관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이소연 (느티나무재단 이사) 

두 분이 서로의 발표를 들으면서, 혹은 발표 자료를 작성하던 시점보다 더 나아간 고민의 내용은 무엇이 있었나? 

또 두 분의 활동 영역에서 해온 그동안의 고민을 토대로 보았을 때, 앞으로 100년 동안 달라지지 않을 우리의 모습과 달라질 모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원고를 쓴 다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했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가 또 터진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들이 믿고 기댈 정보를 가진 곳이 많이 없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도서관이 자료를 저축(Stock)해두는 곳이었다면, 지금 정보는 흘러간다(Flow). 

이 흘러가는 정보들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질서를 잡고 싶은 사람들이 도서관에 찾아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의 양태는 변하겠지만, 변하지 않는 건 내 생활 세계 안에서 지식을 의지할 만한 곳이 어디인가, 하는 버팀목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은 트위터나 유튜브까지 어마어마하게 정보가 많다. 사람들은 여기서 나한테 필요한 지식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서 뭘 봐야 하는지,

이것을 내 생활에서 어떻게 의미화 할 것인지 고민한다. 그런데 지금 지식 플랫폼을 자처하고 나선 곳에서조차 내 생활 세계 안에서의 지식 플랫폼이 되어주느냐,

하면 그 부분은 빠져있다.  느티나무의도서관이 동네 가게에서 컬렉션 버스킹을 열고, 친환경 농부들과 팜 파티를 열며 만났던 맥락이 제가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활 세계 안에서 지식 플랫폼을 만드는 미래의 모습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변화를 보통 시간 단위로 생각하고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들 사이의 차이로 생각하기 쉽지만, 깊이도 중요하지 않나?  저는 제주에 있으니 있으니까,

주로 4·3, ‘기억’의 문제를 얘기를 많이 한다. 재난과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실 “기억 하자” 그러는데,  요즘은 기억이라는 말만 기억하고

참사 사실을 기억하지, 사실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될지는 사실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재난과 전쟁 상황 속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이 얼마나 복잡한 동물인가?  우리가 뭘 기억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다시 반복하지 않는지보다 

그걸 경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며  보통의 인간이라는 게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그런 사람들이 현실에서

또 다른 얼굴로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그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는 거다.  그러려면 책으로는 되지 않는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부대껴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책속에서라도 만나는 거다. 시간을 가지고 깊이 있게 만날 수 있고, 지속력을 가진 공간이 필요하다. 그게 도서관이다. 

요즘에는 추상적 단어를 통해 공존을 이야기하면서도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깊이가 얕아져 가는데 돌봄도, 재난도, 공동체도 다 어렵지 않나?  계속해서 생각의 깊이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도서관을 통해 보고 싶다.

 

 

현장 질문)

여기에 있는 동료 사서들도 궁금해 할 질문. 컬렉션을 하건 지역 시민들과 만나건, 사서들이 공부를 좀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할 사람이 읽으면 좋을 자료가 있나?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Bibliography(비블리오그래피)’라고 하는 자료들이다. 한 주제에 관한 책과 논문 등 참고 자료를 정리해 놓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그게 일반 사람들이 기대하는 사서들이 꼭 갖췄으면 하는 기량이다. 한 주제에 관해 어떤 관련 문헌이 있는지를 빠르게 일별하고 작성하는 스킬.

예를 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지금 굉장히 복잡한 사안이다. 사서들이 이 문제에 관한 가짓수가 나뭇가지처럼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어떤 굵직한 문헌이 있는지 빨리 파악하고 컬렉션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 

 

 

이소연 (느티나무재단 이사) 

정보 찾는 행위를 조개 줍기에 비유하고 싶다. 해안에 있는 조개를 다 줍고 그 중에 가장 좋은 조개만 골라 탕을 끓인다고 상상해보자. 주운 조개들이 금방 상할 거다. 그러니까 딸 수 있는 만큼만 얼른 따서, 조개탕을 끓여서 옆에 사람들하고 같이 먹고, 다음 해변으로 가는 게 우리의 미션인 거다. 홍기빈 소장이 말한 '비블리오그래피'는 멋지게 말한 버전이고, 심플하게 말하면 선생님들이 주로 업무하며 만드는 헤드 파인더 같은 거다. 특정 현안 관련 자료를 모두 망라해 30페이지 안쪽으로 정리해서 내놓을 순 없다. 망라적으로 깊이 들어가 빠짐 없이 만드는 걸 상상하지 말고, "한 권만 볼 수 있다면 이 자료를, 혹시 더 알아 보고 싶다면 이것과 저것을" 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한 가지는 읽는 재미를 놓치지 마셨으면 한다. 독서 모임 운영할 때 같이 읽어보고, 재미가 있다 싶으면 집에도 가져가서도 읽어 보고. 그러다 보면 컬렉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예전에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강좌를 했었다. 그때 같은 책을 함께 몇 차례에 걸쳐 나눠읽었다. 그때 소리를 내어 책을 같이 읽는 게 참 좋았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재미있게 읽고 그 다음에 깊이 읽고 나누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서 한 가지의 지식이 다른 어떤 것과 어떻게 연결될지 스스로 찾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한다. 모르는 거 읽지 말고 아는 것부터 읽고 거기서부터 더 나아가라고. 서로 한 줄씩 읽고, 나누고 확인하는 게 생각보다 재밌다고 말하고 싶다. 

 

 

 

 

 

현장에서 만난 도서관 동료들을 응원합니다. 만들어갈 내일, 오늘의 우리! Bravo!

 


 

* 자료집은 첨부파일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컬렉션 버스킹 프로젝트와 포럼은 도서문화재단씨앗의 후원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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